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여자들의 삶은 남자들의 삶보다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다. 아기자기한 일상들과 세세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각양각색의 삶이 그려진다.
특히 한 부모 아래서 자란 자매들의 다른 삶이 실제로 투영되며 공감을 얻어내서일까, 유난히 자매들의 상반된 삶을 들여다보는 드라마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더욱이 태어난 순서는 유년기와 성장기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념이 적용되며 캐릭터 설정이 더욱 구체화된다.
지난 1일 첫방송에서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인 KBS2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극본 문영남·연출 배경수)도 '칠'자 돌림 이름을 가진 네 자매의 이야기다.
이들 네 딸들 역시, 태어난 순서에 따른 전형화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덕칠(김혜선 분)은 속깊은 큰언니지만 부모의 강권에 사랑없는 결혼도 하고 마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미칠과 이란성 쌍둥이로 키워진 둘째딸 설칠(이태란 분)은 강직하고 반듯한 성격으로 집안의 아들 노릇을 한다.
허영기 넘치는 셋째 미칠(최정원 분)은 설칠과 비교돼 자라며 더욱 강렬하고 보상받는 삶을 원한다. 남자를 잘 다루고 사치스럽다. 막내딸 종칠(신지수 분)은 막내 답게 애교스럽고 밝은 성격이다. 결국 스무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 결혼하는 '사고'를 치지만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이미 세기를 넘어 인기를 끈 고전 소설들에서부터 있어왔다. 현재까지도 영화화가 되풀이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제인 오스틴(1775~1827)의 '오만과 편견', 루이자 메이 올코트(1832∼1888) 의 '작은아씨들'이 그렇다.
'오만과 편견'의 다섯자매중 맏딸 제인은 온순하고 마음이 착하고,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명랑하고 활발하고 이성적이다. 셋째 키티는 다른 자매들처럼 남자들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내숭'이다. 넷째 메리는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다섯째 리디아는 천방지축으로 남자를 좋아하다가 사기꾼과 야반도주하는 '사고'를 친다. 결국 '철없는 부부'의 탄생으로 결말 짓는다.
'작은아씨들'의 네딸 중 큰딸 메리는 여성스럽고 정숙하며, 둘째 조는 활달하고 열정이 넘친다. 아버지에게 '아들 조'라고 불릴 정도로 아들 없는 집의 기둥노릇을 한다. 몸이 약한 셋째 베스는 부끄럼이 많지만 헌신적이고, 막내 에이미는 깜찍하지만 철없고 제멋대로고 속물적인 면마저 있다.
셋째에서 막내로 가면서 캐릭터가 조금씩 혼재되지만, 첫째와 둘째, 그리고 철없는 막내를 그리는 방법은 항상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루이자 메리 올코트의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지난 2004년 방송됐던 SBS '작은아씨들'(극본 하청옥·연출 고흥식)의 네 자매들도 그려지는 주된 스토리는 물론 다르지만 자매들의 성격 만큼은 그다지 차이가 없다.
첫째딸 혜득(박예진 분)은 조용하면서도 섬세하고, 맏이로서의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둘째딸 미득(유선 분)은 터프걸로 사내아이처럼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딸 현득은 소설 '작은아씨들'의 베스처럼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조용하고 소심하다. 넷째달 인득(이윤미 분)은 집안의 귀염둥이로 밝고 활달한 성격이다.
2001년 방송된 MBC '네 자매 이야기'(극본 오수연·연출 이진석)의 맏딸 혜정(황수정 분)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둘째딸 유진(채림 분)은 스스로 독립해서 자아실현을 꿈꾸고, 셋째딸 유미(안연홍 분)는 허영심으로 가득차 화려하다. 몸이 약한 넷째딸 유선(박예진 분)은 순수하기 그지 없다.
이에 앞서 1994년 방송된 KBS 주말극 '딸부잣집'(연출 이응진)은 기존의 정형화된 자매 순서별 성격들과는 배치가 조금 달랐지만, 역시 역대 시청률 50위권에 들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첫째 일령(이휘향 분)은 성공한 캐리어우먼, 둘째 차령(하유미 분)은 순종형의 여인, 셋째 세령(전혜진 분)은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다. 소령과 쌍둥이 자매인 넷째 우령(변소정 분)은 남성적인 성향이 강하며, 막내 소령(이아현 분)은 다정다감하고 지적이면서도 의존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한편 딸부잣집 이야기에서는 이들 자매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 어떤 사랑을 겪어 결혼에 이르고,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크다.
그 가운데 자매들 사이에 한 남자를 둔 연적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빠질 수 없는 이들 드라마의 '양념'이다. '소문난 칠공주'의 설칠과 미칠은 고교동창인 일한(고주원 분)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며, '작은아씨들'의 혜득과 미득은 과외선생 선우(김호진 분)을 놓고 가슴앓이를 한다.
'네 자매 이야기'의 혜정과 유진도 이들과 함께 자란 영훈(한재석 분)과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딸부잣집'에서도 쌍둥이인 우령과 소령이 나중의 소령의 약혼자가 되는 남자(이세창 분)을 사이에 놓고 연적이 된다.
또 한국 드라마에서는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나 '차별된 출생'을 장치로 삽입했다는 것도 특이할 만 하다. '소문난 칠공주'에서는 둘째딸 설칠은 사실은 아버지 친구의 아이이며, '작은아씨들'에서 막내 인득은 아버지가 밖에서 나온 '서출'이다. '네 자매 이야기'에서는 맏딸 혜정은 아버지와 그의 첫사랑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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