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이천. 각종 나무 널빤지와 장비들이 뒹굴고 있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매끈한 병원 내부가 등장한다. 막 지나온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이곳. MBC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의 세트장이다. 각종 첨단 수술 장비와 병원 기자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이 곳에서 환자가 아닌 스태프들이 여기저기 분주히 오간다.
병원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니 특유의 병원냄새는 온데 간데없이 온통 담배 냄새만이 자욱하다. '하얀거탑'의 안판석 PD는 담배를 손에서 떼지 않고 연신 모니터를 바라보며 "컷, 좋아요"를 외친다.
'외과 부교수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방에서 저음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 끝 마다 확신에 차있고 끊고 맺음이 정확하다. 김명민. 병원의 온기대신 세트장의 한기와, 소독약 냄새 대신 따뜻한 담배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이제 막 수술을 마치고 나온 하늘색 가운의 의사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다. 앞쪽에 놓인 의자를 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의사다. 잠시 상황파악이 안된 채 다른 환자가 앉았을 법한 의자에 앉아 유난히 빛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한마디 던진다. "진짜 의사 같죠?"(웃음)
이번 드라마에서 김명민은 명인대 의대 일반외과 부교수 장준혁 역을 맡았다. 천재적인 수술 실력의 소유자로 출세에 대한 욕망이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야심가. 간담도계암 및 췌장이식 수술로 의학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발암이론 연구 분야에서도 저명한 학자다. 김명민은 이번 드라마에서 빼어난 연기력으로 장준혁을 살아있는 인물로 승화시키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인기를 실감하나요.
▶매일 이곳에서 촬영하고 있으니 외부의 반응을 잘 모르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전화를 많이 받아요. 대부분 '재미있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주변 반응을 접할 때 인기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빡빡한 촬영일정에 힘든 점은 없는지.
▶아마 제작진 모두가 많이 지쳐있을 겁니다. 세트와서 새벽까지 촬영하고 또 아침 일찍 나와서 촬영하고. 감기 걸린 사람들도 많아요. 좋은 작품 찍고 있다는 생각에 버티고 있습니다.
-요즘도 수술연습을 자주 합니까.
▶(책상 서랍 속에서 의료용 가위와 실 거치대를 꺼내며 직접 꿰매는 시범을 보인다) 이게 거치대라는 거예요. 요즘도 틈만 나면 이러고 있죠.(웃음) 진짜 의사 해도 되겠죠? 많은 분들이 수술 장면에서 대역을 쓰는 줄 알고 계시는데 보통은 제가 하죠. 정말 가끔은 자문 교수님이 하시기도 하지만 고생스러워도 제가 하고 있습니다.
-장준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주변에서 악역이다 아니다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악역은 아니죠.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에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의 견제를 많이 받아요. 집안도 좋은 집안이 아니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인물이에요. 끌어 오르는 욕망에 대해 주위에서 억누르다 보니 솟구치는 것이 많겠죠. 상당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예요. 참 불쌍하고 안돼 보이기도 하고….
-인터넷은 자주 하는지.
▶'하얀거탑' 관련된 기사는 열심히 봅니다. 그렇지만 리플이나 게시판에는 잘 안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처음 가졌던 생각들이 이런저런 말들로 깨지게 될까봐요. 큰 중심을 잡고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읽다보면 간혹 흔들리게 되잖아요.
-지난 6회 방송에서는 부인을 완벽하게 속이는 장면이 연출됐어요.
▶어쩔 수 없네요.(웃음) 부인(임성언)과의 행복을 위해서죠. 그것 자체가 이기적일 수 있는데... 희재(김보경)와의 이런 관계들이 단순한 불륜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강희재는 장준혁을 이끌어주는 역이죠. 어찌 보면 장준혁보다 한 수 위예요. 부인은 희재와 달리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죠. 무슨 일이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오빠같은 존재가 돼야하죠.
-이순신과 장준혁의 연기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교대상이 될지도 모르겠고. 장준혁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고 보시면 '하얀거탑'을 더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캐릭터도 두 인물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어요. 무언가를 끝없이 고심하는 역이라는 점은 같지만 이순신은 대의를 위하잖아요. 장준혁은 자신을 위해 치밀한 인물이에요. 우용길(김창완)이 '너 지방으로 내려가'했을 때도 무릎을 꿇고 잠시 당황하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다음상황을 꾸며요. 치밀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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