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의 개학 때문일까. 아니면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바람과 이에 따른 때이른 상춘객 때문일까. 드라마 시청률은 전반적으로 추락하고, 안보고는 못베길 드라마는 가뭄에 콩나듯하고 있다.
MBC '이산'은 말이 좋아 월화드라마의 지존이지 지난달 영조(이순재) 승하 이후 갈수록 시청률이 하락, 지난 4일 제49회에선 30.2%로 간신히 '30%대 시청률'에 턱걸이했다. 오지호 허이재 주연의 '싱글파파는 열애중'은 화면은 예쁜데도 5%대 내외에서 허덕이고 있다.
수목드라마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꼴통' 이은성과 '수술천재' 최강국이 버티고 있던 MBC '뉴하트'는 사정이 좋았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33.6%였으니까. 하지만 '뉴하트'는 끝났다. 지난 6일 윤계상의 '누구세요'는 10%, '오버' 송윤아와 '까칠' 김하늘의 '온에어'는 15.2%에 그쳤다.
김수현 드라마도 이상하게 질척거린다. 한때 금방이라도 30%를 넘길 것 같더니 이제 25% 넘기도 힘들다. 지난 8일 제11회가 24.0%. 배종옥의 '천하일색 박정금'도 기세가 좋더니만 요즘은 10%대 후반에서 머뭇거리는 상황. 오히려 이휘향 김효진, 두 극중 모녀의 기싸움이 볼만한 '행복합니다'가 20%대 초반으로 소리없이 강한 형국이다.
이밖에 김상경의 '대왕세종'은 급기야 20%대가 무너졌고 , 최진실의 뽀글퍼머만이 볼 만했던 '내 생애 최고의 스캔들' 8일 첫회는 9.8%에 머물렀다. 뒤늦게 탄력받은 '조강지처클럽'만이 안정적으로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시청률이야 흐름만 보면 되는 것이고 일반 시청자 입장에선 별 상관없는 일이다. 흔히 '대박'이라고 부르는 30%대 시청률의 드라마란, 결국 '이 드라마 오늘 안보면 왠지 안될 것 같'거나, '뭐야, 벌써 끝나..일주일 어떻게 기다려' 정도는 되는 드라마라는 것. 그런데 요즘 이런 드라마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돌이켜보자. 박신양의 좌충우돌 '쩐의 전쟁'(최고 36.0%)은 지난해 초여름 얼마나 뜨겁게 안방극장을 달궜었나. 이리 맞고 저리 맞으면서도 "돈 내놔" 악다구니 쓰는 금나라(박신양)의 그 땀내와 핏대를 어떻게 잊으라구?
'국민언니' 하유미를 탄생시킨 '내 남자의 여자'는 또 어떻고? 잘된 드라마일수록 등장인물 이름이 많이 기억난다고, 김희애 배종옥 하유미 김상중 김병세에 아역 박지빈까지 기억나는 이 드라마는 과연 최고시청률 38.7%를 기록할만했다.
비록 시청률 30%는 넘지못했지만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하얀거탑'의 중독성은 커피향이나 포르말린만큼 강했다(결국 시청률 30%는 숫자라는 얘기다). 윤정희의 눈물이 안쓰러웠던 '행복한 여자'나 이수경-김지훈, 서영희-이필모 커플이 왁자지껄했던 '며느리 전성시대' 역시 주말밤 시청자들을 흠뻑 빨아들였던 드라마다.
그러나 지금. 드라마는 여전히 10여편이 방송3사를 종횡무진하건만 제대로 된 흡인력이 모자란 이유는 뭘까.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베테랑 드라마 연출가가 최근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최근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만 보면 재미있고, 연기귀신급 연기자들도 많이 나오는데 왜 시청률이 예전만 같지 않을까..이런 얘기가 오고간 무렵이었다.
"그건 결국 진정성의 문제에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드라마가 겉멋과 장난질만 치려고 하면 시청자는 금세 안다는 것이죠. '뻔하다'는 겁니다. '대장금'이나 '파리의 연인' '내 이름은 김삼순' 이런 드라마 보세요. 오히려 조금조금 모자란 부분이 많은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들에선 삶의 진정성이란 게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하고 동참해서 같이 해결하고픈. 주인공이 다치면 나도 아픈. 그렇지 않았나요?"
그렇다. 아무리 드라마 초반이라지만, 성마른 여성 드라마작가와 까칠한 여배우, 출세욕에 눈먼 PD, 인간적인 매니저, 이런 '상투적인' 캐릭터는 그만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이들의 고민은 과연 방송사를 배경으로 한 예전 드라마, 예전 캐릭터들의 고민과 그리 크게 다를까.
퓨전-뻥 사극도 한두번이지 과거 실존인물들의 절박함도 없고,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의 현실감각마저 없는 어정쩡한 이들에게서 시청자들은 과연 가슴을 강타할 만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나. '주몽' 송일국이나 '상도' 이재룡, '허준' 전광렬이 그 눈빛으로 전해준 삶의 진정성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나.
터프해 보이지만 속으론 그리고 아들에게만은 자상한 싱글남, 웃기자고 한 것이겠지만 이 아빠가 애 안고 등장할 때 나온 그 '식상함 100%'의 올드팝, 여기에 그 순정과 미모는 다 어디 가고 억척스러운 근성만 남은 아줌마의 뽀글이퍼머와 예의 '아줌마근성'..
'태조왕건' '파리의 연인'처럼 2000년대 이후 소위 '국민드라마'에 등극한 드라마를 떠올려보시라. 과연 '태조왕건'이 화면이 예쁘거나 전투신이 웅장해서 회당 최고시청률이 56.60%가 나왔을까. 또한 '파리의 연인'(56.30%)이나 '대장금'(55.50%)은 단지 박신양이나 이영애가 나와서?
오히려 시청자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50.50%)의 김선아가 던져준 여러 고민들과 이를 헤쳐가는 '틀에 박히지 않은' 모습에서 감동하고 재미있어하고 환호하지 않았나. 또한 '장밋빛 인생'(47.00%)에선 턱하니 알게된 남편의 바람과 최진실 자신의 시한부 삶에서 시청자들은 눈물 쏙 빼며 절절하지 않았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감동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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