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드라마에는 유난히 여자와 여자 대결이 볼 만했다. 이제는 드라마 감초처럼 등장하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자매(흔들리지마)는 물론, 역시 한 남자 때문에 전직 아내와 새 아내로 만난 생면부지의 두 여자(엄마가 뿔났다), 집안 차 너무 나는 안사돈과 안사돈(엄마가 뿔났다) 등 올 드라마엔 불꽃 튀는 여자들이 많았다.
여기에 그래도 법적으로는 모녀였던 두 여자의 한판 싸움(천하일색 박정금)도 있었고, 어린 시절 업보로 다 큰 어른끼리 목숨을 걸고 싸운 두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태양의 여자)도 있었다.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이런 행패와 다툼이 그래도 볼 만했던 건, 연기력이 받쳐준 배역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작가도 그래야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여여 대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사진)의 사월/지영(이하나)과 도영(김지수)일 게다. 두 여자가 내뿜었던 독기와 파멸의 냄새는 그야말로 안방극장을 진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입양된 도영, 나중에 태어난 친딸 지영, 서울역에서 지영을 내다버린 도영, 고아원에서 자란 지영(이때부터 사월), 점점 조여든 사월의 복수의 칼날, 덜덜 떠는 도영의 업보..사람들은 그래서 이 드라마를 '웰메이드 통속극'이라 불렀다.
이런 두 자매의 피 튀기는 복수혈전과 방어전이 실감났던 건 역시나 두 배우의 특출난 연기력 때문이었다. 자신의 '만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점점 거짓말을 부풀리고 못된 짓을 가중시킨 '악녀' 도영의 연기를, '고상한 아나운서' 김지수는 가녀린 몸짓과 표정과 대사로 소화했다. 사월의 차분한 귀기 역시 '밝고 명랑했던' 이하나가 "내 인생 바꿔놓은 값, 절대 용서안할 거야"라며 핏빛 대사를 내뱉을 때 더 돋보였다.
민언련 방송모니터회로부터 '올해의 나쁜 드라마'로 꼽힌 MBC 아침드라마 '흔들리지마'의 두 자매 홍은희와 김다인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두 자매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다. 홍은희 아버지 임채무가 선우은숙과 재혼했는데 선우은숙이 전 남편과 가졌던 딸 김다인을 데리고 들어왔던 것. 여기에 홍은희의 약혼자 김남진을 법적 동생인 김다인이 몹시 사랑하면서부터 '흔들리지마'는 심야 케이블TV에 버금가는 핏빛 아침드라마가 됐다. 계단에서 밀기, 호흡기 떼기, 재산 빼돌리기 등 홍은희의 만행과, "언니의 남자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무효"라며 전면전을 선포한 김다인의 당찬 결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여자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1차원 대결 중에선 MBC '천하일색 박정금'이 압권이었다. 자신의 아들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법적인 엄마' 이혜숙에게 날린 '법적인 딸' 배종옥의 통쾌한 라이트 훅 한 방. 시청자들도 남편 박근형 앞에선 온갖 감언이설, 불쌍한 척 해대며 뒤로는 온갖 만행 다 저지른 '청주댁' 이혜숙의 TKO 패에 속 시원해 했다. 물론 이혜숙 입장에선 '그래도 엄마인데 감히 나한테 이래?' 소리 수없이 했다. 어쨌든 이런 여자들의 육박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창민 등 '박정금' 남자들은 거실에서 소곤소곤 알콩달콩 '잘 지냈다'.
집안이 서로 너무 차이 나는 두 '뿔난' 안사돈간의 냉랭하면서도 가열찼던 갈등도 폭발적이었다. KBS '엄마가 뿔났다'의 '있는 사모님' 장미희와 '세탁소 안주인' 김혜자가 벌인 기싸움은 두 배우의 진중한 연기력과 맞물려 호소력있게 다가왔다. '시어머니' 장미희 눈치만 보면서도 할 말 못할 말 꼬박꼬박 해댄 '며느리' 이유리도 압권. 여기에 한 남자(류진)와 딸(조수민)을 놓고 거의 불량배 수준으로 행패를 부렸던 전직 아내 양정아와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라며 울먹였던 '직장에서만 변호사' 새 아내 신은경의 말싸움 짜증싸움 역시 제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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