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미와 바니의 등장, 발랄한 모습, 씩씩하게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인사하고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에 순간 '악녀'라는 두 글자를 잊었었다. 명랑쾌활하고 통쾌한 웃음소리에 나어린 소녀처럼만 보였다.
그런데 케이블 채널 올리브 '악녀일기'(그들은 이 제목도 촌스러워서 싫다고 했다)는 역시 리얼 프로그램이었다. 에이미와 바니는 시간이 갈수록 주어진 현실에 100% 적응하는가 싶더니 중간 중간 브라운관에서 튀어나온 듯 눈앞에서 리얼 100%의 말다툼을 펼쳤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 시간에 다퉜다, 감쌌다, 째려보다, 보듬다, 참으로 바빴다.
"우리도 가식적으로 '예쁘게 봐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서 찍고 왔습니다"라는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말하지 않으면 안 보이나? 열심히 하는 게? 그런 말, 가식적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악녀일기'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언론사에 들어와 기자와 얼굴을 맞대고 있음에도 인터뷰 내내 거침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전혀 고민하지 않고 '졸려', '나 기운 다 떨어졌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둘 사이에 "맞거든", "아니거든" 소리가 핑퐁처럼 오가며 긴장을 높였다. 딱딱한 어려움이나 격식보다 그저 자신들끼리 수다를 떠는 데 한 명 더해준 듯 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원하는 거라면 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정들이 있는 것만 같은데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싶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이들에겐 좋아하는 대로 대하고 싶다. 싫어하는 이에게 가식적이고 싶진 않다."
'악녀=성질이 모질고 나쁜 여자', 사전적 정의대로 이들은 모진 여자다. 다가오려는 이에게도 잘 마음을 열지 않고 견제하며 그나마 들어왔던 이도 한 번 등을 돌리면 돌아보지 않는다. 몰상식한 사람이 있다면 두고 보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서라도 퍼부어야 하는 등 절대 참고 사는 성격도 아니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싫어하는 이가 있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싫어하면 인사도 안 하고 말 한마디 안 한다. 가식적으로 인사자체를 못해서 곤란한 적이 많았다. 처음 '리턴즈'로 만났을 때도 '악녀일기 3' 때와 다른 작가를 만나서인지 견제를 하더라. 걱정이 굴뚝같았다."
이전에 비해 좀 더 마음을 열게 된 후 촬영했다는 '악녀일기 리턴즈'임에도 작가들은 초기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담당 PD도 "에이미, 바니와는 애증의 관계"라며 "보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가도, 사고 치면 확 때리고 싶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바니 스스로도 "처음보는 사람들은 '왜 악녀야?' 하는 데 조금만 지나보면 '못됐다'. '너 악녀 맞아' 하더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한판 수다의 장으로 본의 아니게 길어진 인터뷰 시간, 여유를 가지고 지켜본 이들은 절대 '나쁜 여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순수해 꾸밀 줄 모르고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 악녀가 된, 어떻게 보면 두꺼운 껍질로 꽁꽁 싸매지 못한 채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어린 과실 같았다.
"'연예인이라면 이럴거다'와 관계없이 솔직한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감춰야 하는 이유, 내 생각을 한 단계는 포장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어떻게 보면 그나마 누군가의 앞에서 싸우고 화내는 사람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뜻이다. 더 세상에 적응한 사람은 대놓고 앞에서 싸우고 화내기보다 뒤에서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후일을 기약한다. 특히 마음 여는 게 어렵지만 한 번 '내 사람'이라고 믿으면 한 없이 퍼주는 스타일, 대신 상처를 받으면 두배 세배는 받고마는 에이미와 바니와 같은 스타일은 나쁜 여자라기 보다는 아픈 여자다.
"'우리 되게 착해요'라고 말한다고 알아줄까. 마음은 안에 있는 건데. 우리도 착한 마음이 있는데 그걸 보는 사람만 본다. 그렇다고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나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악녀일기'의 담당 PD는 에이미와 바니를 두고 "진정한 악녀"라며 "'못됐다'만 있으면 안 보면 그만이고 뇌리에서 지우면 그만이지만 이들은 속속 들이 스며들어 닦이질 않는다"고 표현했다.
방송이 회를 더하고 연예계 활동을 하며 조금은 사회를 알게 됐다는 에이미와 바니,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회에 뛰어드니 어느 정도 조금이라도 맞춰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며 "나 살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는 이들의 말이 웬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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