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우희진(43)이 악녀의 탈을 썼다. 그간 선한 역할만 선보여왔던 그에게 SBS 아침연속극 '나도 엄마야'의 의미는 남달랐다. 대리모, 범죄 등 자극적인 소재 속에서 우희진이 분한 최경신은 악의 끝을 달렸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냐' 혀를 끌끌 찰수록, 우희진의 열연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1987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로 데뷔해 연기 경력만 벌써 30년이 넘었다. 12살 어린 나이에 뭣 모르고 연기를 시작해 하이틴 스타가 됐고, 쉼 없이 연기만 해오다 뒤늦게 30대 중반이 돼서야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한 때는 작품 사이에 공백이 있으면 괴로웠다. 무사히 슬럼프를 극복한 후, 현재 우희진에게 연기는 '삶'이 됐다. 우희진은 "내 삶 끝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엄마야'는 대리모라는 이유로 모성을 박탈당한 여자가 새롭게 찾아온 사랑 앞에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가족의 소중함, 따뜻한 세상의 의미를 새겨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우희진은 극중 재벌가의 며느리이자 남편 신현준(박준혁 분)의 사랑을 받으며 남들이 볼 때는 다 가진 여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구불임을 선고 받고 대리모를 의뢰하는 최경신 역을 맡았다. 대리모 윤지영(이인혜 분)이 몰래 낳은 아들을 빼앗으려 악행을 일삼은 인물이다.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124부작의 긴 호흡으로 극을 이끌었다.
▶ 일일드라마가 호흡이 길어서 끝날 때는 에너지가 많이 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에 안 해봤던 역할을 했다. 아침드라마 장르 특성상 센 내용을 연기했는데 언제 또 이런 역할을 해볼까 생각하면서 촬영했다.
-좀처럼 볼 수 없던 악녀 연기를 선보였다.
▶ 맨 처음에 이 드라마를 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이전에 아침드라마를 했을 때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걸 알았다. 방송 시간이 짧지만 자극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니 심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미 마음을 먹고 연기에 도전했다.
-최경신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나.
▶ 최경신이 상식 밖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캐릭터를 이해해야 했는데 그게 배우의 숙명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럴 수가 있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람이 욕심이 생기고 욕망이 커지면 이 지경까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캐릭터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쁜 사람은 고생도 좀 하고 대가를 많이 치러야 할 텐데, 짧은 시간 안에 인물을 보여주려다 보니 고생을 덜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최경신이 죄를 뉘우치며 엔딩을 맞았다.
▶ 시청자 입장에서는 최경신이 나쁜 짓을 했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난 게 아닐까 싶었다. 착한 사람들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시청자 반응들이 다양했다. 어떻게 봤나.
▶ 댓글을 종종 본다. 모든 반응을 다 신경 쓰면 연기에 제한이 될 테지만 누가 어떻게 반응하나 궁금해서 보게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여도가 높더라. 우리 드라마가 사람들의 관심도 3위에 들었다고 들었다.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아쉬운 점도 얘기해주셔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체감한 반응은 무엇이 있나.
▶ 어르신들은 '그런 역할 다시는 하지 말라'고 말하셨다.(웃음) 본인이 내 역할을 해명해주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 엄마도 '너 되게 못되게 나왔더라'고 얘기했다. 나도 모니터링을 하고서 나에게도 저런 얼굴이 있었구나 깨달았다. 내가 원래는 평화주의자인데, 반대되는 걸 연기하려니 어려웠다.(웃음) 집에서 혼자 대본을 읽고 분석할 때가 어려웠다. 그래도 배우로서는 안 해본 캐릭터를 도전해보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악녀 이미지가 자리잡힐까봐 고민되지는 않았나.
▶ 배우는 본인의 이미지를 고집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처음 고민한 부분은, 캐릭터를 단조롭게 보여줄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걸로 보여줄 지였다. 감독님께서는 너무 상투적인 캐릭터는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를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악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셔서 각오는 했다. 우희진으로서 역할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아예 극중 인물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인혜와 앙숙 케미를 보여줬다.
▶ 초중반에 서로 몰입해 있다가 같이 촬영할 때는 케미가 좋았다. 맨 처음에 아이를 지울 것인지를 놓고 대립하는 연기를 할 때 서로간의 케미가 제일 크게 느껴졌다.
-악행을 일삼다가 후반에 우는 장면까지 감정적으로 힘들었겠다.
▶ 그래도 순간에 집중도 있게 연기했다. 어떤 배우는 눈물연기를 할 때 음악을 듣는다던데, 나는 촬영 전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머릿속에 이미지화를 하다가 바로 촬영을 한다. 몰입이 안 될 때는 대본의 내용을 조용히 다시 읽는다.
-1987년에 데뷔해 연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나.
▶ 나는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 두 세 시간만 자고 피곤한 상태로 일할 때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을 즐기고 좋아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을 안 하면 잊혀질 거라고도 생각한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최선의 것으로 일하고 있다. 그걸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꾸준히 감사하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근형 선생님을 멋있게 생각하는데, 치열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오면서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빛내오셨다. 그렇게 오래 연기를 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오랜 연기 경력을 언제 실감하나.
▶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누가 얘기해주면 가끔 느낀다. 작품이 끝나고 공백을 가졌다가 다시 작품을 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20~30대까지만 해도 작품 사이의 공백이 괴로웠다.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뭘 해야 할 지 몰랐는데, 이제는 쉬는 시간에도 마음이 편하다. 슬럼프 때 견디고 난 후에는 스스로 단단해진 것 같다.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다 보니 내 몫을 못 하면 도태되는 것 같다. 마음을 잘 지키고 건강하게 즐겁게 컨디션을 유지하려 한다. 쉴 때는 친구도 많이 만난다.
-워낙 오래 연기를 하다 보니 슬럼프가 찾아온 적은 없었나.
▶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연기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한 번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가족이 정말 큰 힘이 됐다. 엄마가 많이 도움을 줬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야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왔다고 생각한다. 일을 오래 쉬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도 현장이 너무 재미있다.
-아역배우들과 연기하면서 자신의 아역시절도 생각났겠다.
▶ 물론이다. 오히려 나는 아역배우들에게 너무 많은 충고를 해주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조언들을 들었겠는가. 될 수 있으면 편하게 대해주려 한다. 어릴 때 나는 내성적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봐도 내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서 성격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번 아역들과도 자연스레 친해진 것 같다. 30대 중반에 슬럼프 때는 연기를 학교 다니듯이 당연한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중에 제일 잘 하는 게 이거(연기)라고 느낀 다음에는 끝까지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이쪽 관련 일을 했을 것 같다.
-출연작 중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빼놓을 수 없다. 멤버들끼리 다시 모이고 싶지는 않나.
▶ TV에서 다시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이의정과 가끔 통화하는데 이제니는 미국에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이제니를 방송에서 보고 직접 다시 보고 싶었다. 신동엽 오빠가 리더십이 있는데 다시 모일 수 있을까 모르겠다.(웃음)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어서 서로 얘기하면서 공감할 것 같다. 그 때 참 좋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서로 이 멤버여야 맞았던 케미가 있었던 것 같다.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 이제 그런 생각할 때는 지난 것 같다. 내가 마흔이 됐을 때 결혼을 정말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이 마음 먹으면 다 하는 건 줄 알았다. 그 이후로는 좋은 친구와 일, 가족이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게 됐다. 소개팅이 이제는 싫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다. 절대 독신은 아니다.(웃음)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연기는?
▶ '미생' 같이 내 이야기처럼 공감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정제되지 않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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