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사회는 항공여행에 대한 근본 인식이 실속형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해외 LCC 이용객이 늘며 경험이 쌓여갔다. 특히 젊은 층의 배낭여행 붐 이후 유럽 LCC 경험자들이 K-LCC의 주요한 여론형성자가 되었다.
학습을 마친 K-LCC 이용객들은 동남아행 항공편에서 아예 작은 배낭을 메고 탑승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배낭 안에는 간단한 식사류와 음료, 무릎담요, 태블릿 등 탑승 필수용품이 담겨 있었다. 이들 여행객은 항공편을 교통수단일 뿐이라 생각하고, 항공사의 풀서비스보다는 항공료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항공비용을 줄여 해외 현지에서 쇼핑을 하나라도 더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호텔을 업그레이드해서 묵는 게 현명한 해외여행이라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여행=기내식'으로 인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기내식 먹은 지 오래 됐다"는 말의 속뜻은 "해외여행 갔다 온 지 오래 됐다"는 의미의 우스갯소리였다. 해외여행의 꽃이 여행지가 아닌 기내식을 먹으며 가는 비행기 탑승 순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의 항공여행에 대한 오랜 관행이 깨지자 K-LCC업계도 발빠르게 마케팅을 강화했다. 처음에 K-LCC들은 "제주도 가는 데 굳이 기존항공사 탈 필요 있나"라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이 같은 여론은 설득력에서 주효했다. 이후 제주행 항공편에서는 기존항공사의 점유율이 빠르게 줄고, K-LCC의 점유율은 수직 상승했다. 기존항공사들은 제주행 항공편에서 점유율이 빠지자 항공기를 국내선에서 빼내 국제선으로 옮기는 등의 자구책을 썼다.
이후 놀라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K-LCC 국내선 항공편 승객 중에 연예인이 등장했고, 대기업 오너가 타기 시작했고, 정치인들도 타기 시작했다. 지금 시각에서야 전혀 놀라울 게 아니지만 당시 K-LCC 내부에서는 화제가 될 만큼 오히려 어색해 했다. 제주도를 가면서도 기존항공사의 비즈니스석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K-LCC를 탄 것이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코로나19에서 막 빠져나오기 시작한 2022년 국적항공사의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친 연간 총 여객수는 5583만명으로 전년대비 53.6% 늘었다. 국내선은 3633만명으로 전년대비 9.6% 증가한 반면 국제선은 1950만명으로 전년대비 507.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1년에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으로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 수요가 늘면서 국내선 여객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친 2021년 항공여객은 3636만명이었지만 해외여행이 봉쇄되자 우리 국민들이 국내여행으로 대체하면서 국내선 여객이 3315만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내선 여객수 만을 놓고 보면 2021년 3315만명, 2022년 3633만명 등 종전 최고치였던 2019년의 3298만명을 연거푸 넘어서며 매년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치인 2022년의 국적항공사 유임여객 출발기준 총 여객수는 4475만명이었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 802만명, 아시아나항공 628만명 등 기존항공사는 모두 1430만명을 기록했다. 반면 K-LCC들은 무려 2716만명으로 기존항공사를 2배 가까이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 별로는 제주항공 722만명, 진에어 653만명, 티웨이항공 563만명, 에어부산 530만명, 에어서울 172만명 순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 2배 이상이 연간 항공기 탑승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연간 항공여객은 2017년 1억 936만명, 2018년 1억 1753만명, 2019년 1억 2337만명으로 매년 1억명 대에서 꾸준히 늘다가 코로나19 이후 2020년 3940만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이전에 항공여객이 4000만명 이하를 기록한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직후인 1998년(3361만명)과 1999년(3789만명)이었다.
코로나19 직전까지 우리나라 인구수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1년에 비행기를 한 번 이상 탔다는 얘기이다. "비행기 태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관용구 '비행기(를) 태우다'는 말은 '남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높이 추어올려 주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는 게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2017년~2019년 사이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비행기를 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의 항공업계에서는 연간 항공여객수 1억명 돌파는 꿈의 숫자였다. 그런데 그 꿈 같은 숫자가 K-LCC 등장과 K-LCC의 인식전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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