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 '용기의 時代' ] 송경흡11. 파미르 넘은 '고선지'

발행:
채준 기자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사진제공=송경흡 작가

작품명 : 고선지

작품사이즈 :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파키스탄 북부의 '훈자마을'은 최근 여러 유투버들의 여행기로 알려진 배낭 여행객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그런 훈자마을이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의 장군이었던 고선지와 무슨 연관이냐고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현재도 오르기 힘들다는 파미르고원을 넘어 오래전 훈자마을의 옛이름인 '소발률국'을 점령했다.


당시 당을 위협했던 '토번'의 후방 연합국가였던 소발률국이 점령당함으로서 당나라는 군사적인 힘으로 실크로드를 연결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의 인쇄제지술과 나침반들이 전해졌고 이후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용되는 통로가 바로 이 지역이다.

파미르고원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끝도 없는 산맥지형임과 동시에 낙후된 인프라로 오늘날도 평범한 여행객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을 고선지는 1000년도 전에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넘었고 전투에서 승리까지 함으로써 당시 서역 일대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 덕분에 고선지에 대한 평가는 해발 2000미터에 불과했던 알프스를 넘었던 '한니발'이나 '나폴레옹'과의 비교는 불가하며 전쟁의 역사에서 고선지는 '미친자'로 불리고 있다.


고선지는 당 현종의 명령을 받는 당의 장수였지만, 그의 여정을 보면 일제 강점기시대 나라를 잃고 중앙아시아를 떠돌던 동포들이 떠오른다. 대부분 현지화되었지만 그 동포들역시 현지에서 고려의 문화를 유지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은 이어져오고 있다. 고선지역시 지금은 분쟁지역인 신장지역과 파미르고원을 넘나드는 여정을 통해 그의 흔적을 깊게 남겼지만 안타깝게도 그곳들은 현재시점에선 접근하기 힘들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고선지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를 연구하는 고려인 사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애잔함과 그리움..,, 현실에 도전한 불굴의 용기와 안타까운 최후까지 고선지는 일제 강점기 동포들의 투쟁사와 묘하게 그 흐름이 닿아있다.


우리 민족사를 관통하는 연민과 그 연민조차도 사치스런 감정으로 치부할만큼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고선지', 그의 이름을 추모하며.......



고선지는


/사진제공=송경흡 작가

그의 출생은 선비족의 나라 당의 장군이었던 고사계가 아버지다. 그는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721년 당나라 유격장군이 되어서 토번 세력을 제압하였으나 이후 이들이 반란을 일으켰을때는 진압에 실패했다. 현재의 신장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였고 이후 스스로의 판단으로 압바스 왕조, 우마이야 왕조를 정복하고자 안서도호부의 서북쪽에 위치한 탈라스강까지 진군 했지만 탈라스 전투(751년)에서 패했다. 탈라스 전투는 동아시아 제국과 서아시아 제국 간의 첫 번째 대규모 전쟁이었다.


고선지의 패배는 동맹군이었던 카를룩(Karluk)의 배신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투에서는 결과적으로 패배하였으나 이슬람군의 피해가 훨씬 더 컸음을 보면 고선지의 군대가 군사력면에선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755년 안녹산의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병하였으나 감군 변영성의 배신으로 참수형을 당한다.



사서에서의 고선지


/사진제공=송경흡 작가

'신당서(新唐書) 고선지전(高仙芝傳)'은 고선지와 봉상청의 최후를 전한다.


황제(현종)가 감군 변영성(邊令誠)에게 군중(軍中)에서 (고선지와 봉상청을)베어 죽이도록 했다. 변영성은 봉상청을 베어 죽여 그 시체를 거친 대자리에 싸서 버렸다. 고선지가 뒤늦게 도착하자 변영성은 도수(刀手) 100명에게 자신을 따르도록 지시한 뒤 고선지에게 말하기를, "대부(大夫)에게도 역시 황명이 있다."고 했다.


고선지는 "내가 후퇴한 것은 죄를 지은 것이니 그 때문에 죽는다면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보고 창고의 식량을 도둑질했다는 것은 모함이다"며 변영성에 "위로 하늘이 있고, 아래로 땅이 있으며, 삼군(三軍)이 모두 여기 있는데, 어찌 임금께서는 이 일을 모르시는가?" 라고 말했다.


휘화 병사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모집했던 처음 의도는 적을 쳐부수고 나서 큰 상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적(안녹산군)의 기세가 이 순간에도 성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관을 고수하게 되었다. 내게 죄가 있다면 너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너희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원통하다고 외쳐라!"라고 하자, 군중에서 모두가 "원통하다!"고 크게 외쳤는데 그 소리가 사방에 진동했다.


고선지가 봉상청의 시체를 보고, "그대는 내가 발탁했고, 또 나와 절도사를 교대했다. 지금 그대와 더불어 죽으니 이는 모두 운명이 아니랴!"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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