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auto/21/2026/01/2026011912035275570_1.jpg)
작품명 : 개마무사 대장 김종현
작품사이즈 : 250mm + 500mm + 450mm(h)
작가의 말
'김종현'은 '고려거란 전쟁'당시 후퇴하는 거란 군을 추격했던 고려 중기갑 기병대의 대장이었다.
역사서에 그는 문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 최정예 기병대의 대장으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가 이끈 고려의 중기병대는 '고려거란 전쟁'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한 핵심 전력이었다. 그가 이끈 기마대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강감찬이 이끈 고려군이 소배압의 거란군과 최후의 공방전을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
깅감찬이 이끄는 20만 고려군과 소배압이 이끈 정예 거란군과의 전투는 서로간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승부였다. 예측할 수 없는 팽팽한 전투의 승패는 아주 작은 틈새 하나로도 급격하게 기울 수 있는데, 조금 늦게 전투에 합류한 김종현의 기병대가 거란군의 후방을 급습하면서 전투의 승부는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거란군은 완전히 동요하여 대형이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며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퇴각하고 말았다.
당대에 이름 높았던 거란의 맹장 '소배압'역시 간신히 살아 도망쳤을 만큼 거란군은 치명적인 패배를 맞았다. 단 한번의 회전으로 '거란'은 동북아 맹주의 자리에 심각한 위협을 받았고 고려는 황제국 다운 실력을 인정받고 주권을 지켜냈다. 물론 이런 전술의 설계엔 강감찬이 있었지만 전투에 늦지 않게 참여한 김종현의 기마대가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개마무사'로 불렸던 고구려의 중갑기병은 고려에 이르러서도 그 명맥이 이어졌고 김종현이 이끈 중갑기병은 그 존재를 증명했다. 고구려는 그 용맹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용맹함과 전술은 고려에 이르러 만개했던 것이다.
'김종현'은 고려거란전쟁에서의 활약이외엔 역사서에 특별한 기록이 없지만 그가 고구려의 개마무사단을 계승한 장군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단을 계승하고 전투에서 그 존재를 증명한 고려의 '중갑기병부대'와 '김종현' 장군을 기리며....
김종현은
본관이나 출생년 및 초기 생애와 사망 기록 등은 알 수 없다. 제3차 여요전쟁에서의 맹활약을 보여주기 전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1011년 박종검과 더불어 감찰어사로 임명되었다는 기록 밖에 없다.
그는 제3차 여요전쟁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공을 세운 그는 그 해인 1019년에 '예부원외랑'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전쟁 전처럼 12년이 지나고서야 덕종이 즉위한 해인 1031년에 '우간의대부'로 임명된 것에 이어 다음 해인 1032년에는 '우산기상시'로 임명된 기록만 전해진다.
사서에서의 김종현
김종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전한다.
사서에서는 그를 예부원외랑, 우간의대부, 우산기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제3차 여요전쟁 당시에는 병마판관의 직위로 전장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3차 여요전쟁에서는 거란 소배압이 이끈 정예군 10만이 고려를 침공했을 당시 강감찬의 고려군은 흥화진 동쪽 삼교천에서 수공으로 거란군을 크게 격퇴했다(삼교천 전투). 하지만 소배압은 큰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란 기병 특유의 우수한 기동력으로 개경으로 남하했다. 강감찬은 김종현에게 기병 1만을 주어 추격을 명령했고 김종현 휘하 고려 기마대와 함께 추격전이 펼쳤다.
김종현은 현종을 보호하기 위해 개경으로 입성한 후 현종의 명령을 받들어 북진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던 소배압의 거란군은 귀주성 앞에서 강감찬의 고려군 본진 약 21만명과 생사를 건 회전을 펼쳤다. 김종현의 기마대는 거란군의 배후를 공격하여 승리를 확정지었다.
김종현이 기병이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거란군이 최정예 기병이었고 이를 추격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기마대를 이끌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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