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인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Chasm) 우려 속에서도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양극재 시장은 전년 대비 30%가 넘는 견조한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양극재 기업들은 물량 확대와 더불어 고부가 가치 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중국 브랜드들의 도전을 받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전 세계 전기차(EV, PHEV, HEV)에 탑재된 배터리용 양극재 사용량은 총 2,649kt(킬로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기록한 1,958kt 대비 약 35.3% 성장한 수치다. 배터리 업황이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 흐름은 멈추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양극재 시장의 성장은 전기차 인도량 증가와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2025년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은 전년 대비 약 21.5% 증가한 2,147만 대를 기록했다. 차량 한 대당 탑재되는 배터리 용량이 커지고 주행거리가 긴 모델에 대한 선호가 지속되면서 양극재 사용량 증가 폭이 차량 판매 증가율을 앞질렀다는 분석이다.
국가별·업체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중국 기업들의 강세가 여전히 매섭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내수 시장을 등에 업은 프리미엄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채택이 늘면서 중국계 양극재 업체들의 출하량은 압도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Non-China)에서는 한국 양극재 기업들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LG화학,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 주요 4사의 양극재 적재량은 북미와 유럽 시장의 전기차 생산 확대에 힘입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2025년은 양극재 기술의 '대전환기'였다. 하이니켈(High-Nickel)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는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하려는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90% 이상의 니켈 함량을 가진 초고성능 제품으로 진화했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은 삼성SDI와 현대차그룹 등에 공급되는 하이니켈 양극재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수익성을 방어했다. 반면, 보급형 시장을 겨냥한 LFP 양극재 시장에서는 중국의 독주 속에 한국 기업들이 리튬·망간·철·알루미늄(LMFP) 등 첨단 보급형 소재 개발로 맞불을 놓는 형국이 전개되었다.
소재별 비중에서는 LFP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Y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 주요 OEM들이 저가형 엔트리 모델에 LFP 배터리를 대거 채택하면서 전체 양극재 시장에서 LFP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한국 기업들도 LFP 양극재 양산 체제를 서둘러 구축하고 있으며, 2026년부터는 국산 LFP 양극재가 탑재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될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 관리는 2025년 내내 업계의 화두였다. 리튬, 니켈 등 주요 광물 가격이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으나, 과거 고가에 매입했던 원료 재고가 수익성에 하방 압력을 가하는 '역래깅 효과'가 일부 발생했다. 그러나 하반기로 갈수록 원가 구조가 개선되고 공급망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이익률 회복세가 뚜렷해졌다.
전문가들은 2026년 이후의 시장 전망에 대해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 등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산 소재를 배제한 '탈중국 공급망' 구축 여부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북미 현지 합작법인(JV) 가동을 통해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으며, 폐배터리 재활용(Recycle)을 통한 소재 회수 시스템을 갖추며 환경 규제 대응력도 키우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5년 글로벌 양극재 시장은 양적으로는 35%라는 고성장을 달성했다. 질적으로는 LFP와 하이니켈이라는 양극화된 수요 구조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혁신이 치열하게 전개된 한 해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양극재 시장이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2030년에는 현재의 3배 이상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캐즘이라는 일시적 정체기를 지나 '본격 대중화' 시대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한국 소재 기업들이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용 양극재와 나트륨 이온 배터리 소재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 패권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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