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를 많이 듣다 보면 그 노래가 소위 말하는 기본기 위에 올라 있는 노래인지, 아니면 열정과 흥으로 밀어붙이는 노래인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안 배운 것보다 배운 것이 좋다. 그런데 기본기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보호막이 되고 누구에게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노래는 청각예술이다. 책으로 배우기는 어렵다. 요즘은 유튜브에 좋은 영상들이 많고 전문가들도 직접 채널을 운영한다. 깊이 있고 유용한 콘텐츠도 적지 않다. 실제로 유튜브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노래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는 맥락과 순서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 노래 실력이 늘기보다 지식이 늘어가는 느낌이 먼저 생긴다. 출발은 노래 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방향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노래를 배우다 보면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지식을 조각처럼 모으게 된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오히려 처음보다 더 어색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 상태를 '지식의 저주'라고 부른다.
어디선가 들은 우화가 하나 있다. 춤을 너무나 아름답게 추던 학이 있었다. 그 움직임과 아우라는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질투 많은 여우가 찾아와 물었다. "날개를 들 때 오른발을 먼저 드니 왼발을 먼저 드니? 한쪽 발을 들 때 다른 발은 펴고 있니, 구부리고 있니?" 그후로 학은 더 이상 아름다운 춤을 추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흐름 속에서 움직이던 몸이 설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최근 한 레슨생의 노래가 변했다. 공허하게 들렸다. 노래의 완성도는 아직 미숙했지만 자기만의 색이 분명했던 학생이었다. 눈에 띄게 거슬리는 건 어느 날부터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천장을 바라보는 시선 처리였다. 이유를 묻자 친구들이 피치가 떨어진다며 그렇게 부르라는 팁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실제로 눈을 치켜뜨면 피치가 약간 올라가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 학생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본인의 음색, 매력, 정체성 대부분을 내어주고 약간의 피치 상승을 얻었다.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지식을 익히는 시기도 필요하고 잠시 정체되는 시간도 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어색해지는 과정도 지나간다. 하지만 노래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는 일이 아니다. 조금씩 쌓이고 조금씩 바뀌는 숙성의 과정이다. 약간의 정확도를 얻는 대신 자기만의 매력을 잃게 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법칙으로만 배운 발성은 때로 족쇄가 된다. 그러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설명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은 오히려 떨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부정확한 지식 위에 쌓인 확신은 학습의 방향을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굳어진 감각을 다시 바꾸는 데에는 처음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식은 분명 노래를 돕는다. 그러나 지식이 감각보다 먼저 들어오면 표현은 줄어든다. 노래는 설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느냐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몸으로 연결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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