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3대 영화제가 있다. 칸과 베를린, 그리고 베니스 영화제다. 그러나 기준을 달리한다면 세계 3대영화제를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 만들어지고 기꺼이 관람료를 지불한 관객에 의해 소비된다. 많은 우리 영화가 국경을 넘어 관객을 만나며 이로써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지금, 영화는 문화산업의 주요한 축이다.
영화제 역시 세일즈 마켓으로서의 위상이 더욱 큰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좋은 영화를 각국에 소개하고 판매하는 세일즈 마켓으로서라면 세계 3대 영화제는 그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2일 "마켓으로 본다면 단연 칸과 토론토국제영화제다. 유럽 시장의 관문으로서 칸 영화제를 꼽는다. 하지만 거대한 북미 시장의 관문으로 손꼽히는 것은 토론토 영화제이고 아시아 시장에서는 우리 부산국제영화제나 중국의 상하이 영화제를 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토론토 영화제는 칸, 베를린, 베니스에 이어 세계 4대 영화제로 손꼽힐 정도의 위상을 지녔다. 베니스를 능가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건만 유독 세계 3대 영화제를 편애하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찬밥'이다.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제30회 토론토 영화제가 열렸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 허진호 감독의 '외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 강이관 감독의 '사과' 등 5편의 영화가 대거 진출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콧대높은 북미의 배급자들이 한국영화를 홀대한 데 비하면 달라진 우리 영화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영진위는 아시아영화네트워크(AFIN)와 공동프로모션을 펼쳤고 이곳 미디어개발국 세일즈오피스 내에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개설, 활발히 세일즈를 지원했다. 직접 영화제에 다녀온 영진위 관계자는 "다섯편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한국영화의 밤 행사도 성대하게 치러졌고 인포메이션 데스크도 영화 관계자들로 내내 북적였다"고 말했다.
'외출'은 아시아 이외 관객의 성원을 확인했고 '형사'의 독창적인 미감도 큰 호응을 끌었다. 미국에 많은 고정팬을 확보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나 유신의 끝을 블랙코미디로 버무린 '그때 그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얼마에 판매됐다는 가시적인 결과물은 없었지만 세계의 관심을, 북미 관객의 열띤 반응을 확인했다는 점만으로도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이번 영화제를 다녀온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성과는 또 있었다. 문소리가 주연을 맡은 신인 강이관 감독의 '사과'(사진)가 토론토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영화제인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와 달리 토론토는 비경쟁영화제다. 관객 평가로 결정되는 관객상이 가장 큰 상이고, 영화제에 참여한 109개국 335편의 작품 가운데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섯 작품 남짓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반응이 뜨거운 작품이었지만 수상에는 무척 놀랐다. 대단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토론토 영화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뜨겁지 않았다. 우리 영화들이 현지에서 열띤 반응을 끌어냈다는 단신 몇개가 대부분. 북미시장의 진출을 위해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포기하고 토론토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연 '형사'의 이명세 감독도 출국 전 넌지시 쓴소리를 했다.
이명세 감독은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미를 노린다면 뭐니뭐니 해도 토론토나 선댄스 영화제다. 할리우드가 있는 북미시장을 처음부터 노렸다"며 "몰라서 그러는지 관심이 없는지, 하지만 너무 관심 밖에 있다. 기자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섭섭함을 내비쳤다. 해외 영화제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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