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나타난 엄정화에게서는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난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오로라 공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뒤 더해진 여유 때문이었을까. 남자들을 홀리는 섹시한 팜므파탈로 처음 다가온 엄정화지만 때로 그녀는 이런저런 속얘기를 남김없이 꺼내고픈 허물없는 친구요 언니같다. 엄정화는 "그건 다 오랫동안 활동한, 예전부터 봐온 사람들이 주는 친근함"이라고 응수한다. 그러고보니 그녀가 데뷔하고 흐른 시간이 벌써 13년이 됐다.
"아주 어렸을 때, 그저 최고만을 열망했다"는 엄정화는 "이제 믿음직하고도 편안한 모습의 배우이자 가수이고 싶다"고 이야기하다 말을 바꾼다.
"사실 일에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살지는 않아요.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까. 최고를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워커홀릭처럼. 지금은 일을 할 때가 더 즐거운 느낌이에요."
지난 십수년동안 별로 쉰 적이 없다며 활짝 웃는 그녀에게서는 과연, 지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는 25일이면 그녀가 쉼없이 준비한 새 영화를 꺼내놓을 차례다. 휴먼드라마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제작 싸이더스FNH)에서 엄정화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피아노 선생님 지수로 분했다. 소중한 꿈을 철없는 바람 따위로 받아들이는 세상에 콧방귀를 날리던 그녀는 제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해줄 소년 경민(신의재 분)을 만난다. 모차르트를 만난 살리에리, 천재를 가르치게 된 보통사람…. 엄정화는 그런 지수를 '아주 편안하게'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선택된 몇몇에게만 환상적인 신세계를 허락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연예의 세계는 퍽 닮았다.
살리에리를 절망케 했고, 지수를 곤두서게 했던 열등감이란, 평범한 이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배우이자 가수로 궤도에 오른 엄정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에 관한 것부터 이 일을 선택했을 때까지 그런 일이 참 많았어요. 나는 왜 저렇게 잘하는 애들처럼 태어나지 못했을까.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수없이 생각했어요. 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뿐인데 과연 옳았던 걸까, 안되는 건데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열정적이고도 긍정적인 노력가 엄정화는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믿으며 천천히 계단을 밟아올라 지금에 왔다. 그녀라고 얼른 시상식 가장 높은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왜 없었을까. 엄정화는 다만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는 날이 꼭 올거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처럼 지치지 않고 일할 뿐이다. 바쁘기에 누릴 수 있는 달콤한 여유와 하고픈 일을 하고있다는 기쁨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멋져지는 것 같다. 영화 속 선생님 지수에게는 제 인생을 비춰줄 천재 제자가 필요할지 몰라도 엄정화에게는 필요치 않다. 그녀는 스스로 빛나니까.
p.s. 엄정화의 '호러비츠를 위하여'는 절묘한 두 상대를 맞는다. 바로 그녀가 자랑스러워마지않는 동생 엄태웅과 세계인을 열광케할 것이 분명한 축구 축제 월드컵이다. 개봉 일주일 전에 엄태웅의 '가족의 탄생'이 관객과 만나고, 개봉 일주일 후에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정화는 엄태웅도 월드컵도 자신의 "경쟁상대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동생과는 "서로 영화가 잘 나온 것을 알기에 서로 잘 되기를 기대중"이고, 월드컵은 "어차피 밤이니 와중에도 영화는 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윈윈전략, 파이팅이다. <사진=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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