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와 씨팍', 일부러 봐줄 필요없다

발행:
김현록 기자
기대이상 완성도로 '국산' 우려 날려버린 '문제적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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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관람가야 그렇다치고 '청소년·임산부·노약자는 관람 사절'이라니, '아치와 씨팍'은 요란한 광고부터가 기가 찬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오버스러운 안내문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르게 커가야 할 우리 청소년을 위해서라면 18세관람가는 당연한 처사요, 자라날 태아와 곱고 예쁜 것만 봐야 하는 임신부의 정신건강에도 가히 좋지는 않을 듯하다. 어르신들이라면 되먹지 못한 젊은 것들의 상스런 말투에 혈압이 오르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치와 씨팍'은 '기가 찬'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기찬' 애니메이션이다. 애들은 못타고 심장 약한 이들도 못타는, 삐그덕대지만 신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100여분을 질주한 기분이랄까. 그러나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난무하는 패러디와 욕설, 엉뚱한 미감과 도발적 설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가짐이라면 이 문제적 롤러코스터에 탐승할 준비가 된 셈이다.


영화는 배경부터 사뭇 도발적이다. 때는 언제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근미래, 대화보다 주먹, 주먹보다는 따발총이 먼저 나가는 이곳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똥'이다. 제도권은 배변 장려 및 관리에 열심이고, 생체칩을 기준으로 그 양을 측정해 마약 성분의 '하드'를 상으로 준다. 우리의 주인공 아치와 씨팍은 하드 훔치기가 주업인 생양아치고, 자뻑 탤런트 이쁜이는 돌연변이 갱스터들 덕에 신기의 배변능력을 갖게 된 아가씨다.


롱다리 추앙 풍조를 역행하는 신체 비율과 쉴새없는 육두문자, 인명 경시에 동성애 혐오, 잔인한 폭력이 짬뽕된 '아치와 씨팍'은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과 '인어공주'로 대표되는 디즈니의 바른생활 애니메이션과 극을 달린다. '슈렉'의 기발하지만 건전한 패러디도 간단히 뛰어넘었다. '하하'보다는 '낄낄'이 어울리는 이 발칙한 애니메이션은 입버릇 고약한 꼬맹이들이 판치는 '사우스 파크'나 MTV가 망쳐놓은 두 친구를 주인공으로 삼은 '비비스와 버트헤드'(Beavis and Butt-head)에 비해야 마땅하다.


이런 막나가는 저질하위문화를 맛깔나게 담아낸 우리 장편 애니메이션은 '아치와 씨팍'이 최초다. 긴 제작기간 탓인지 시의적절한 촌철살인의 세태풍자나 정치적 조롱은 찾을 수 없지만, '아치와 씨팍'은 등장만으로도 기특한 도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더욱 뿌듯한 것은 뛰어난 완성도 때문이다. '매트릭스'와 '원초적 본능', '슈퍼맨'과 '미저리'는 기본이요, '스머프'와 '파리의 연인', 신해철의 '재즈카페'까지 비틀어내는 패러디 솜씨는 발군이요, 상상력을 극대화한 그림과 속도감있는 전개도 일품이다.


한국애니메이션의 큰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더빙 문제를 해소해버린 목소리 캐스팅도 좋다. 류승범 임창정이 그려낸 양아치, 현영이 그린 막나가는 자뻑녀, 신해철이 그린 갱단 교주님 등은 캐스팅부터 연기까지 신통할 정도다.


솔직히 인정하련다. 각국의 최고 전문가를 끌어들여 수년간 돈을 들여 만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시기하던 속마음을, 국산 애니메이션이란 이유로 약간의 어설픔은 눈감아주던 편향된 너그러움을. 한국산이라고 봐주고 볼 필요없는 자신만만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오랜만에 나타났다. '아치와 씨팍'에 7년을 투자한 끈덕진 조범진 감독의 말마따나 "아무 생각없이 즐겨라." 신나고 또 시원하다. 개봉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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