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영화제행(行)이다. 김태우가 독문학 박사과정 중 늦깍이로 입대한 말년 김병장으로 출연한 옴니버스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감독 김영남·제작 이모션픽쳐스)이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 간다.
김태우와 각종 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됐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베를린영화제에, 홍상수 감독과 함께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영화제에 갔다. '얼굴없는 미녀'와 '사과' 역시 연이어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고, 홍상수 감독과 함께 한 신작 '해변의 여인'까지 베니스행이 점쳐지고 있다. 축하를 건네는 기자에게 김태우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너스레를 떤다. "상 받는 영화는 이걸로 끝이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흥행 영화를 하려구요."
'영화제용 영화'에만 출연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시선에 김태우는 여유롭게, 그러나 진지하게 대응한다. "제가 봐서 좋은 시나리오를 고른 게 그렇게 된 거죠.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고, 흥행이 되나 안되나를 무시했고, 이미지를 고려한다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작품이라면 다 하겠다는 거죠."
김태우의 배우생활은 "이제 겨우 10년." 이제까지의 행보는 평생 이어가게 될 배우 김태우의 삶 중 극히 일부일 뿐이고 일명 '마이너 이미지'란 고려할 문제조차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3년 뒤엔느 코믹 배우가 돼있을지도 모르죠. 저라고 '투사부일체'에 출연하지 말란 법 있나요?
코미디와 김태우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다. 그간 작품에서 보여 온 심약한 지식인의 이미지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말없고 내성적이며 어눌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많이 다르다고 김태우는 말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다는 거예요." 빙그레 웃음을 띠고 천연덕스레 받아치는 모습이 심상찮다.
자타공인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 김태우는 사실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반드시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수년째 인정해 마지않는 유쾌상쾌한 남자다. 어딘지 답답하고 암울한 청춘의 이야기 '내 청춘에게 고함'에 문득 웃음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도 그다. 500만원을 빌려간 뒤 돈이 없다며 달랑 5만원을 건넨 친구에게 김병장이 "너 지켜보고 있어"라고 뜬금없는 경고를 날리는 순간은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자꾸 제가 코미디로 간다고. 자제시키느라 고생하셨다구요.하하."
그런 김태우가 유일하게 고지식하고 고집을 꺾지 않는 부분이 바로 연기다. 인물에 제대로 녹아드는 것만이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는 이 고집스런 배우는 앞으로도 남의 시선이나 자신의 이미지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본 관객이 배우 김태우를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내 청춘에게 고함'을 보고 김병장을 떠올리시고, '접속'을 보고 기철이를 떠올리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김태우는 다 비슷비슷해' 하셔도 신경 안써요. 그냥 역할에 녹아들어가는 배우, 그래서 신뢰가 가는 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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