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환경 감독의 '각설탕', 권형진 감독의 '호로비츠를 위하여', 그리고 내친 김에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까지. 한국영화의 장르가 넓어지고 탄탄해졌다. 괴수영화, 동물영화, 음악영화, 사극이라는 장르의 신천지를 단단하게 개척했다는 얘기다.
사실 장르영화가 무슨 구속이나 원죄처럼 욕을 먹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르영화는 수많은 선배영화인들이 차곡차곡 쌓아놓은 흥행의 법칙이자 안전한 제작지침서다. 그렇다고 '장르영화 만세'를 외칠 것도 아니지만, 괜스레 탈장르를 호기있게 선언했다가 결국 관객 괴롭히고 민망해 할 바에야 기초에 충실한 게 훨씬 낫다.
27일 '드디어' 개봉하는 '괴물'은 잘 알려진 대로 한국에서 몇 안되는 괴수영화다. '괴물'을 단지 몬스터 무비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깔린 한국적 소시민의 감성과 휴머니즘이 울겠지만, '괴물'은 어쨌든 그 놈의 불쌍한 괴물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숙주(The Host)라 이름붙여진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같은' 상상력과 웨타스튜디오의 섬세한 CG기술에 의해 멋지게 탄생했다.
'괴물' 같은 한국형 괴수영화의 탄생은 할리우드 괴수영화의 종횡무진을 지켜본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피터 잭슨의 그 가공할 '킹콩'의 위력과 순정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고질라'의 그 거대한 공포, '죠스'의 그 끔찍한 식탐은 또 얼마나 많은 한국 팬들을 위축시켰던가. 이런 의미에서 '괴물'은 한국 괴수영화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오는 8월10일 개봉하는 임수정 주연의 '각설탕'도 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 동물영화의 새 장을 개척했다. 24일 기자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각설탕'은 한마디로 돌고래의 '프리 윌리', 복실이의 '벤지'처럼 말못하는 짐승을 감성적 존재로 접근해 만든 영화. 이환경 감독은 물론 중반 이후 동물영화라는 장르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말 '천둥'의 움직임은 물론 마음씨까지 잡아내려 한 미덕은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같은 한국 동물영화의 바통은 생일선물로 훔쳐온 1년생 강아지 '마음이'(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한 고집센 소년과의 동거를 그린 '마음이..'(감독 박은형, 9월 개봉)로 이어진다. 아역스타 유승호와 이 강아지가 어떤 호흡을 보여, 커피 뽑아주는 '101 달마시안', 농구하는 '에어 버드'의 미국 개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록 크게 흥행은 못했지만 엄정화 신의재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진작 나왔어야 할 충무로표 웰메이드 음악영화였다. 절대음감을 타고난 주인공 소년(신의재)과 낙향 비슷하게 한 피아노원장(엄정화)과의 정신적 교류와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무엇보다 피아노라는 악기와 피아노 연주가 줄 수 있는 매력과 영화적 즐거움을 '샤인'이나 '레이' 못지않게 선사한 영화다.
여기에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주연의 '왕의 남자'. 한판 신명나는 마당극을 본 듯한 이 영화야말로 사극이라는 장르의 흥행성을 재확인시켜준 쾌거다. 저잣거리에서의 질펀한 광대놀이, 구중궁궐에서의 섬뜩한 양반 망신주기, 여기에 "이년들아, 말을 해라"라는 포복절도의 대사야말로 한국 사극영화의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 매력은 관객 1230만명이라는 숫자로 증명됐다.
앞으로도 '사생결단'이나 '비열한 거리'를 뛰어넘는 누아르, '여고괴담'이나 '장화, 홍련'을 뛰어넘는 호러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뛰어넘는 SF 영화, '올드보이'를 뛰어넘는 스릴러가 속속 터져나오기를 영화팬들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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