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상경에게서는 아날로그 냄새가 난다. 화려하지도 유려하지도 않으며, 양주보다는 소주, DMB보다는 라디오를 좋아할 듯한...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잠에 빠져 드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김상경은 사람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분명 '올드 보이'다.
그런 그가 오는 14일 개봉하는 '조용한 세상'(감독 조의석ㆍ제작 LJ필름)에서 사진 작가 역을 맡았다. 남의 마음을 읽는 까닭에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는 예술가는 얼핏 김상경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에 이어 또 한 번 휴먼 미스터리에 도전하는 김상경과 만났다.
-'조용한 세상'을 하게 된 까닭은.
▶주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한 번쯤 우는 영화를 택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반전도 있고, 그동안 안해본 캐릭터이기도 하고. 제일 대사가 없는 편이기도 하다. 물론 홍상수 감독은 예외다. 시나리오가 아예 없으니깐.(웃음)
-말랑말랑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지는 12월에 미스터리물이다.
▶무슨 말인지 안다.(웃음) 관객이 많이 들어도 스스로 만족이 안되는 영화가 있고, 적게 들더라도 만족하는 영화가 있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은 흥행이 안될 걸 알고 했다. 만족도도 '살인의 추억'보다 컸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흥행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제작보고회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속내를 알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도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이고. 정치적인 부분에 솔직한 것 같다.
▶사실 정치색이 별로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졌길 래 그 때 정말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다. 불합리하고 거슬리는 걸 싫어하지만 배우가 너무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휴가'도 택시 기사라는 평범한 사람이라서 했지, 민주투사였으면 안했다.
-'조용한 세상'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진작가 역을 맡았다. 평소 이미지와 상반되는데.
▶비슷한 점도 많다. 사람들은 내가 친구가 200만명 정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절친한 사람은 별로 안된다. 내 이야기도 잘 모른다. 그런 면에서는 나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내 안에 있는 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낸 셈이다.
-작품에서 비춰지는 이미지가 상당히 아날로그적이다.
▶맞다. 유행 따라가는 것은 잘 못한다. 아날로그가 더 좋은 것 같다. 지나가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게 있다.
-화려한 역보다는 삐딱선을 따는 역을 많이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난 스타를 꿈꾸지 않는다. 한류의 대장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예전에 한류를 목표로 한 드라마에 출연 제의를 많이 받았는데 거절했다. 만일 했다면 불편한 게 많았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못하게 됐을 것이다. 욘사마가 홍상수 영화를 하면 과연 어울렸을까. 그냥 이대로가 좋다. 안티도 별로 없고, 누가 물어 보면 좋다는 사람도 많은.
-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소리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술 먹으면서 홍상수 감독에게 "누가 나보고 홍상수의 페르소나"라고 한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더라. 홍 감독의 영화를 존중한다. 인간적으로도 존경하고.
-'조용한 세상'에서 중앙대학교 동문인 박용우와 호흡을 맞췄다. 미묘한 조합이기도 하다.
▶원래 특이한 조합을 좋아한다. 송강호와 김상경,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안성기와 김상경, 박용우와 김상경도 마찬가지다. 낮술을 먹은 뒤 느끼는 몽환적인 감각을 좋아하듯이 기묘한 앙상블을 좋아한다.
-차기작에 관한 계획은.
▶'조용한 세상'에 '화려한 휴가'까지 너무 가파르게 달렸다. 당분간은 좀 쉴 생각이다. 시나리오도 머리 속에 잘 안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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