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많이 고팠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비치길 원하는 건 모든 연기자들의 업(業)이다. 목표이며 일상이다.
그러나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연기자는 또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송혜교는 이제 비로소 배우의 이름에 값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오는 6월6일 개봉하는 영화 '황진이'(제작 씨네2000, 씨즈엔터테인먼트)의 장윤현 감독은 "다르고 새로운 모습을 봤"고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다"고 송혜교에게 말했다.
감독의 말은 모든 여배우에게 '로망'이랄 수도 있을 '황진이'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송혜교의 귀에 다가왔다. 송혜교는 "나 역시 많이 고팠다. 장 감독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줬다"며 반색했다.
'황진이' 송혜교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탄생된 송혜교의 '황진이' 역시 기존의 박제된 이미지의 기생 황진이와도 달랐다. 예술적 재능이 넘쳐나는 농염한 여인으로서 황진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반상의 구분이 인간과 세상을 가르며 억압하던 시대, 자신을 기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머슴을 증오하며 사랑했던 여인. 신분만이 인간을 규정하던 시대에 그 상류 신분들의 위선을 여지없이 까발렸던 여인. 그리고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당당한 삶을 살아냈던 여인. 송혜교의 황진이는 그랬다.
당초 송혜교는 "과연 이런 큰 캐릭터를 내가 연기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황진이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을까. 아마 만나지 못했을 거다. 이 작품을 내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만들지 못하면 기존에 내가 해왔던 비슷한 것들만 하게 될 것 같았다.
-모 케이블채널에서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를 방송 중이다.
▶그 땐 그저 나를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내 모습 그대로만 보여주면 됐다. 하지만 그 뒤 과연 내가 정극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날 캐스팅해줄까 하는 걱정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KBS 2TV 미니시리즈 '가을동화'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몇 작품을 했지만 그것 역시 연기자로서 욕심이라기보다 맡겨져서 했던 듯하다.
-'황진이'를 터닝 포인트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전엔 그럴 만한 계기가 없었나.
▶SBS '햇빛 쏟아지다'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 연출자와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는 재미를 맛봤다. 그 전엔 겁도 났다. 나이도 어렸고. KBS 2TV '풀하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끌고 갈 만한 힘과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황진이'는 어떤가.
▶배우라는 타이틀에 부끄럽고 싶지 않다. 모든 여배우들처럼 나 역시 여우주연상을 받고 싶다. 그 만큼 '황진이'는 내게 중요한 작품이란 얘기다.
-관객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서화담을 만나는 장면이다. 너무 짧게 표현이 되기는 했지만 어쩌면 영화의 핵심적인 이야기가 담긴 장면일 것이다. 놈이로 인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지만 결국 서화담을 만나 신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그리고 놈이에 대한 증오를 비로소 버릴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증오? 그건 결국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말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거침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송혜교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그 만큼 고스란히, 또박또박 전해줬다.
-현실 속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고 나면 그 순간 화가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추억만 생각나지 않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그럴까?'라고 너스레를 담은 되물음에 쾌활하게 웃는 그가 "좋은 추억 남기라"고 말했다. 호기심은 이어졌다.
-당신의 이성관이나 당신의 연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늘 호기심을 갖는다. 어쩔 수 없다. 어떤가.
▶어떤 누구와 교제를 하면 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대응할 뿐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쓴다면 당초 숨어버린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거침없는 생각을 전하는 그에게 영화 개봉을 앞둔 느낌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은, 늘 그렇듯이, 상투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길 원하나.
▶흥행이 어디 내 의지대로 되나. 솔직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다만, 거문고 장면은 좀 아깝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열심히 연습한 거문고 연주 장면이 편집돼 못 보여드리게 돼 아쉽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쉬움을 전하지만 그건 연기자가 당연 지닐 것 같은 바람 정도로만 보였다.
"기생년을 이토록 어렵게 품는 사내가 어딨답디까?"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양반의 위선을 비웃는 여인의 이미지가 과연 그런 미소 속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다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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