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크레셴도'(decrescendo), 이탈리아 어로 '점점 여리게'라는 의미의 음악 용어다. 영화제를 이야기하는데 웬 음악용어인가 싶을 수 있지만 제45회 대종상영화제는 '데크레셴도'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45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이 열렸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시상식 장은 화려했던 레드카펫의 열기, 신나게 무대를 연 1부, 조금은 차분해진 2부에 이어 자체 음소거라도 시켜놓은 듯 조용했던 객석이 눈에 띄는 종반부 등 영화제 시상식은 점차 원치 않던 차분함을 찾으며 의도치 않은 진중함을 더했다. 그리고 이날 시상식은 눈에 띄는 특이사항 없이 조용히 자연스레 흘러갔다. 큰 문제가 없었던 시상식, 그러나 어떻게 보면 없었던 이변이 더욱 큰 문제였다.
우선 대종상 시상식의 백미인 각 주연상 부문은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미리 부터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뻔히 보여주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5명 중 '세븐데이즈'의 김윤진, '경축! 우리사랑'의 김해숙, '궁녀'의 박진희, '행복'의 임수정 등 4명이 등장했다.
시상식에 앞서 미리 '김윤진과 전도연의 경쟁구도가 아닐까' 하는 예측과 '전도연과 김해숙의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나왔으나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전도연과 여우조연상을 받은 김해숙으로 김윤진의 수상은 미리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남우주연상은 역시 그랬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다섯 명 중 '추격자'의 김윤석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예측 가능한 결과와 올 사람 위주로 온 경제적인 시상식은 시상식을 보러온 사람들과 레드카펫을 위해 모인 시민들의 기운을 갈수록 쭉 빼놓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자 열려있는 장소의 특성상 이날의 레드카펫은 알던 사람, 모르던 사람 모두 발길을 세우고 영화계 스타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자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덕분에 행사 전 레드카펫은 열기가 넘쳤다.
현장에 도착한 스타들은 코엑스 입구에서 타고 온 차에서 내려 현장에 준비된 차로 옮겨 탄 후 레드카펫의 입구에서 내려섰다. 이후 코엑스 동측 야외 광장을 가로지르는 긴 레드카펫을 걸어 준비된 포토존에서 취재진에 포즈를 취했다. 배우들은 다시 레드카펫을 걸어 건물 안 로비까지 가로지른 후 안측 무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출연진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길고 긴 레드카펫 가에 두 겹, 세 겹으로 모여서서 지나가는 스타들의 모습에 열광했다.
최소 휴대폰까지 모두 카메라 하나씩 꺼내든 이들과 취재진의 경쟁은 그 긴 거리에 스타의 화려함을 더욱 빛내는 플래시의 파도를 그렸다.
그러나 이 순간이 이날 대종상 시상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되리라고는 이때는 예상치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원래 스타들은 늦게 오는 법이지"라는 기대를 깨뜨리며 조용해져가는 레드카펫에 사람들은 불안함 속에 환호를 술렁임으로 바꿨다.
"더 올거야"하며 애써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9시가 넘어 레드카펫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영화제 시상식 레드카펫이 왜 이러냐"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돌렸다.
다시금 흥을 돋워 컨벤션 홀 안에서 시작된 대종상영화제 1부의 시상식은 환호와 함께 시작됐지만 시작 시점부터 이미 객석의 뒤쪽엔 빈자리가 산재했다.
"티켓이 모두 나갔다"는 말과 다르게 휑한 뒤쪽 객석의 관객들은 환호하는 앞 쪽과는 다르게 팔짱끼고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했다. 그리고 1부가 끝나자 대거 이동이 시작됐다. 우선 앞과 뒤를 막론하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어나 자리를 떴다.
친구와 팔짱을 낀 채 시상식 장을 나서던 한 시민은 "더 올 사람도 없을 것 같고, 남은 부문 수상도 대충 예측이 가능한 것 같다"며 "중요한 볼거리들은 다 본 것 같으니 그냥 나가서 놀기로 했다"고 말하며 빠른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더 좋은 위치의 빈자리를 찾고자 하는 남은 관객들과 스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시상식 장을 들썩이게 했다.
객석과 무대를 가다듬고 다시 시작된 2부는 화려한 뮤지컬 '시카고' 팀의 축하공연에도 처음부터 반응이 훨씬 잠잠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갈수록 빠져나가는 사람이 늘자 결국 종반으로 갈수록 누가 수상했다는 결과가 나와도 별 호흥이 없는 싸늘함 마저 감돌았다.
객석의 반을 겨우 유지하며 시작한 2부는 객석의 3분의 1을 겨우 채운 관객들과 함께 의도치 않게 대종상영화제의 진중함을 더했다.
그리고 점점 반감되는 호응 속에 식을 이어간 45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은 결국 영화계 사람들의 축제로 조용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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