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news

‘멋진 하루’, 수다 속에 감춰진 하정우의 발견

발행:
김건우 기자
사진

이윤기 감독은 여자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잘 읽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감독의 첫 작품인 '여자,정혜'부터 '러브 토크', 아주 특별한 손님'까지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는 법이 없는 여성 캐릭터들을 느긋하게 따라가다보면 일상이라는 하나의 미스터리 속에서 감춰진 진주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멋진 하루'는 전작들과 더불어 원작을 기초로 한다. '멋진 하루'는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 단편집 제목이다. 이 감독은 뼈대 위에 새로운 살을 붙이듯 자신만의 아우라를 통해 새롭게 완성했다.


직업도 애인도 없는 희수(전도연)는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빌려준 350만원이 떠오른다. 헤어진지 1년 만에 불편한 재회를 한 두 사람은 함께 350만원을 구하기 위해 다니기 시작한다.


'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과 다른 흥미진진한 두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전작들에서는 카메라가 조용히 주인공을 관찰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관찰자의 역할을 제3자가 맡았다는 점이다. 희수가 만나는 병운의 여자들이 그들이다. 호스티스, 이혼녀 등 굴곡이 많을 법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어느 누구 하나 병운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 감독은 여자들만 나오는 원작과는 달리 여자, 남자 비중을 섞어 배치했고 얼굴이 알려진 조연들을 통해 낯선 느낌을 희석시켜 우리 주위에서 한번쯤은 봄직한 인물들로 채워 넣었다.


두 번째는 부쩍 많아진 대사량이다. 과거에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냈지만 '멋진 하루'에서는 많은 대화를 통해 조금 더 쉽게 감독의 의도를 이야기한다. 희수를 제외한 병운과 그의 여자들은 쉴새없이 말을 쏟아낸다. 검은 마스카라를 짙게 해 차가움과 강한 자존심이 느껴지는 희수와 정 반대로 자존심을 상실한 것 같은 병운, 그는 모든 사람의 비위를 능청스럽게 잘 맞춰주면서 이야기한다. 최고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여기에 '병운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도와줘야 해요'라며 어려운 사정에도 아낌없이 베푸는 그녀들은 오히려 희수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이 같은 흐름을 쫓아가다보면 희수의 변화 밑에는 흥미진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희수는 병운을 '자상하지만 무책임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다고 하면 때려주고 가려고 했어”라며 희수는 병운을 찾아올 때 이미 돈을 받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돈을 빌려서 돌려주려는 병운의 태도에 깜짝 놀란다. 희수는 병운의 행동과 병운의 그녀들을 통해 조금씩 생각을 바꾼다.


하지만 정작 병운의 그녀들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물병자리는 상황에 따라 사람을 쉽게 판단하다'고 내뱉으며 병운을 걱정하는 선배의 아내 등 결국 현실이라는 틀 안에서 바뀌는 생각은 쳇바퀴처럼 돌아갈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을 자극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처음부터 보지 않고, 본다고 해도 이미 익숙해져버린 눈앞의 상황만을 볼 뿐이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으로 행복해져서 힘이 생기잖아"라는 병운의 생각만이 진실일지 모른다.


전도연은 ‘밀양’ 이후에 힘을 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대선배 전도연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를 한 하정우다. ‘추격자’, ‘비스트 보이즈’ 등으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하정우는 미워할 수 없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한다. ‘멋진 하루’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병운의 모습이 있기에 가능했다.


'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이 좀 더 관객과의 소통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다. 일상과 고독에 대한 전형적인 형식을 벗어나려고 많은 장치를 했다. 하지만 무미건조함 속의 수다보다 재기발랄한 음악과 즐기는 수다가 더 즐겁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2세 이상관람가, 9월 25일 개봉.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슬라이드

아일릿 민주 '꽃향기가 폴폴~'
엔하이픈 '자카르타 공연도 파이팅!'
정수빈 '팬미팅 잘 다녀올게요~'
블랙핑크 '가오슝에서 만나요!'

인기 급상승

핫이슈

연예

유방암 행사, 연예인 '공짜'로 부르고·브랜드엔 '돈' 받고

이슈 보러가기
스포츠

'가을야구 현장' 한화-삼성, 운명의 PO 격돌

이슈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