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슬혜. 낯선 이름이다. 단역 출연 몇 편이 프로필의 전부였던 그녀가 요즘 충무로의 무서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미쓰 홍당무'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박쥐', 장혁의 연인으로 출연하고 있는 '팬트하우스 코끼리', 차태현과 호흡을 맞춘 '과속삼대' 등 무려 4편의 영화가 대기 중이다.
영화계가 침체돼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쉽지 않은 요즘, 황우슬혜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도대체 황우슬혜의 어떤 모습이 박찬욱을 위시로 한 유명 감독들과 제작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첫 번째 선보이는 '미쓰 홍당무'는 그 단초를 제공한다.
황우슬혜는 '미쓰 홍당무'에서 못난이 공효진이 짝사랑하는 유부남 선생님과 교제를 하는 엉뚱한 러시아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만 꼭 잡고 자는 게 꿈이라는 엉뚱 처녀는 뒷구멍으로는 음란 채팅에 열을 올리고 남자를 유혹하고자 공부에 한창인 독특한 캐릭터이다.
황우슬혜는 이 엉뚱한 처녀를 백치미를 넘어서 백치에 가까운 모습으로 잘 소화해냈다. 자신은 진지해도 남들이 보면 웃겨죽는 그런 여자, 황우슬혜는 정식으로 출연한 첫 영화에서 완벽에 가깝게 배역을 소화해냈다.
황우슬혜는 "오디션을 봤는데 경쟁률이 600대 1이었어요. 감독님이 예쁜 척 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딱 맞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라며 특유의 비음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따낸 배역이기에 황우슬혜는 '나는 우리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러시아어를 무려 3000번이나 써가며 연습을 했다. 단 한 장면에 등장하는 장면인데도.
음란대사의 절정이자 '미쓰 홍당무'에 가장 폭소를 자아내는 이른바 '자~쥐, 깔까'(러시아어로 라이타) 신은 28시간 동안 촬영했다. 라이타를 섹시하게 말해달라는 요청으로 체육창고에서 남자 선생님을 앞에 놓고 쉬지 않고 말하는 이 장면은 지금까지 코미디 영화와는 또 다른 웃음을 관객에 선사한다.
그러나 정작 멀쩡한 처녀가 수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이런 묘한 단어를 500번 이상 되풀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법. 조금만 발음을 다르게 해도 남자 스태프들이 자지러지고, 후배위를 연상케하는 자세로 문제의 단어를 외칠 때는 상대역인 이종혁마저 쓰러졌다.
그렇게 어렵고 또 웃기게 찍은 이 장면으로 황우슬혜는 뜻밖의 기연을 얻었다. '미쓰 홍당무'의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이 편집실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자신의 차기작 '박쥐'에 전격 캐스팅한 것이다.
'박쥐'에서 황우슬혜는 '미쓰 홍당무'와는 전혀 다른 철저한 못난이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선배 송강호가 겁탈하려 하는 여성으로 출연, 이미 촬영을 마쳤다.
황우슬혜는 "너무 행복해서 요즘은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감사했다.
하지만 행운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역이 떨어지지 않는 법. 황우슬혜는 지금까지 다른 신인들처럼 숱한 오디션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거쳤다. 심지어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맺을 때도 오디션을 봤다. 박해일 소속사에 들어가기까지 그녀는 비주얼 가수로 활동하자는 제의도 수없이 받았다.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명 여성 그룹도 그 중에 하나였다. 그럼에도 황우슬혜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더 빠른 길을 애써 뿌리쳤다.
스물여섯, 연기활동을 시작하기에 빠른 편은 아니다. 목소리는 여성보단 중성에 가까울 정도로 저음이다. 그럼에도 황우슬혜는 도전장을 던졌다. 본명이 '황진희'인 그녀는 '우슬혜'라는 예명을 짓고 각오를 다졌다.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우주까지 알려진다는 뜻이란다.
"연기와 피부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는 독특하게 솔직한 그녀. 목소리가 컴플렉스였지만 장쯔이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그녀. 화장하면 엄정화를 닮았다는 뻔뻔하기도 한 그녀.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에게 "다음 작품에도 꼭 써달라"며 약속까지 받아낸 당돌한 그녀.
충무로 기대주가 어떨지 궁금한 사람, 황우슬혜의 이력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궁금한 사람은 '미쓰 홍당무'로 확인할 수 있다. 촬영장에서 일부러 '따'를 자처했다는 그녀의 연기는 이름과 함께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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