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유달리 많은 창고영화가 세상에 빛을 봤다. 제작된 지 1년 이상 개봉되지 못한 영화를 창고영화로 정의할 때, 10월까지 '사과' '하늘을 걷는 소녀' '아기와 나' '서울이 보이냐' '방울토마토' '허밍' '바보' '그 남자의 책 198쪽' '도레미파솔라시도' '날라디 종부뎐' '아버지와 마리와 나' '무림여대생' '쉿! 그녀에겐 비밀이에요' 등이 관객과 만났다.
또한 연정훈이 입대 전 촬영을 마친 '스위트 드림'과 재희가 출연한 '맨데이트:신이 주신 임무'를 비롯해 '소년은 울지 않는다' '너를 잊지 않을거야' 등이 개봉 대기 중이다.
15편이 넘는 창고영화들이 올해 개봉한 까닭은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줄면서 상대적으로 배급 여력이 생겼다는 점과 개봉 시한이 올해까지인 영화가 많기 때문이다.
창고영화는 한국영화 거품과 침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담긴 작품들이기에 뒤늦은 개봉은 축복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렇게 개봉한 창고영화들은'사과' 등 수작도 상당수 있었지만 모두 흥행은 참패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했다.
과연 창고영화가 왜 양산됐으며,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2006년 한국영화 거품이 창고영화 양산
'괴물'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2006년은 한국영화 제작이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입봉'(데뷔를 뜻하는 은어)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화 제작이 최고점에 달했다.
창고영화는 2006년 거품의 부산물이다. 충무로에 돈이 몰리면서 우후죽순 제작된 영화들이 개봉 시기를 놓치면서 해를 넘기게 된 것이다. 충무로에 붐처럼 일었던 코스닥 우회상장 붐도 이런 현상에 일조했다.
모회사 경영실적이 악화되면서 영화를 개봉할 경우 손실로 잡히기 때문에 개봉 시기를 마냥 뒤로 미룬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들도 개봉이 미뤄졌던 창고영화들이 올해 대거 개봉한 데는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줄면서 상대적으로 배급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극장 비수기와 할리우드 영화 개봉 시점을 피하기 위해 다른 영화들이 배급 일정을 조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창고영화들이 개봉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올해 개봉한 창고영화들이 대개 비수기에 개봉한 것은 이 때문이다.
투자사들에 약속한 개봉 시기에 쫓겨 개봉한 경우도 상당하다. 일단 개봉을 해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개봉한 것이다.
#개봉시기 늦어지면서 동시대 정서 놓쳐
창고영화들은 1년이 넘게 개봉이 늦춰지면서 동시간대 정서를 놓치게 마련이다. 원래 개봉시기였다면 통했을 정서가 시간이 지나면서 구태의연하게 비치는 경우가 많다. '무림여대생'의 경우 액션장면이 2년 전이었다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 텐데 현재는 TV 드라마에서도 그런 수위의 액션이 등장하면서 힘이 빠졌다.
성장기에 있는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는 개봉이 늦춰지면서 앳된 모습을 지금에서야 보는 경우도 있다. 유승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촬영한 작품인 '서울이 보이냐'를 중학생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관객에게 이런 점은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개봉일정이 갑작스럽게 정해지면서 마케팅 전략이 원활하게 세워지지 않은 경우도 태반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개봉이 정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정보나 기획의도를 관객에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마케팅회사 대표는 "어느날 갑자기 영화가 개봉하게 됐다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배우 스케줄도 전혀 홍보에 참여할 수 없고, 마케팅 전략마저 세울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씁쓸해했다.
#창고영화 흥행실패, 원인이냐 결과냐..악순환의 반복
창고영화에는 형편없는 완성도 영화가 있는가 하면 왜 이제야 개봉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빼어난 수작도 있다.
문제는 이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영화를 개봉한 제작사들과 개봉을 앞둔 제작사들은 창고영화라서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창고영화로 통칭해 불리면서 관객이 안보게 된 것인지를 놓고 분석에 한창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영화 완성도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창고영화로 관객이 도매금으로 취급하더라"며 "관객과 소통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봉이 늦어지면서 인지도에 밀리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창고영화들의 선례로 관객이 나쁜 인식을 갖게 됐으며, 적절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서 관객이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내년에는 올해처럼 창고영화가 많이 개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제작편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창고에 묵혀놓을 영화 자체가 적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작환경이 어려운 만큼 혹독한 검증을 받고 제작되는 영화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져 창고로 직행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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