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져보니 이제껏 40년을 했더라고요. 오래했다고 생각 했는데 어느 날 생각하니 앞으로 40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강수연. 나이 마흔 다섯에 40년의 연기 경력을 지닌 그녀가 말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개봉(13일)을 앞두고 만난 자리였다. 그녀의 고백은 쉬이 들리지 않았다.
"저는 성인이 돼서 데뷔한 배우가 아니잖아요. 아역 시절이 있었고, 청소년기 넘어가는 시절이 있었고, 거기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절도 겪었다. 지금도 중견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또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남았죠. 잘 겪어가야지요."
'여인천하'와 '문희'로 브라운관을 누볐지만 스크린 주연 복귀는 '서클' 이후 무려 8년만. 그녀는 "앞으로 오래 해야 할 거니까 작품 수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하기 싫은 작품을 해야 할 나이를 지난 것 같다"고 했다.
"(생활 연기자가 되는 건)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좋은 작품만 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좋은 작품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생활의 문제도 있고, 좋은 작품이길 바라지만 안되기도 하고. 어렵지요."
1987년 스물 하나 나이에 동양권 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처음 갖게 된 배우다.
배우가 한 작품으로 상을 받건 큰 흥행을 하건 감사하고 기쁜 일이죠. 하지만 그 성과가 다음의 발판은 아니에요. 다음에는 다시 발가벗고 시작하는 게 배우죠. 사람들은 하나가 잘되면 또 잘 될 거라고 기대를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잖아요. 기대치만큼 가기가 너무 버겁고 부담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강수연은 '달빛 길어올리기'에서 고집스런 한지 만들기 작업에 동참한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 역을 맡았다. 임권택 감독과는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22년의 재회다.
그러나 "아버지같은" 임권택 감독과는 함께 작업하지 않을 때도 늘 만나고 함께하는 사이. 왜 임권택 감독이 거장이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거장 아니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수연이 본 임권택 감독은 그녀가 아는 어떤 감독보다 본인에게 의심이 많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다.
"저 경륜에도 자기를 버리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새 매체를 공부하는 걸 즐거워하세요. 이번이 첫 디지털 영화시거든요. 제가 느낀 점이 많아요…. 당연히 거장이시죠. 그만큼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새벽 4시 이전에 주무시는 걸 못 봤고, 촬영 3∼4시간 전에 나와 뭔가를 읽고 계세요. 매일!"
그녀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사모님이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감독님 낮잠자는 모습을 한 번도 못봤어.' 저도 그래요. 아직도 집에 들어와서 낮에 잠깐 눈을 붙이실 때 침대에 눕지 않고 의자에서 웅크려 주무신대요. 10분이라도 편하게 주무시라 했더니, 너무 편안하면 나태해질까봐 그런다고 하셨대요. 그 이야기가 송곳처럼 들렸어요."
그녀에 따르면 임권택 감독은 요즘 더 의심이 많아졌다. 20번을 찍으면 20번을 고치고 늘 질문을 던진다. 같은 증세가 그녀에게도 벌어졌다.
"다음 작품요? 일단 개봉을 하고, 두 작품을 두고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선택해야 할 지 설문이라도 하고 싶어요. 정말로요. 연륜이 있는데 딱 보면 안다고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연륜이라는 게 의심병 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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