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여름 극장가의 가장 큰 특징은 '100억 영화'로 불리는 대형 기획들이 무려 4편 연이어 관객을 만난다는 점이다. 100억 영화라 하면 어림잡아도 300만명 이상이 관람해야 겨우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작품들. 프린트 및 마케팅에 드는 비용을 따로 계산하면 훨씬 많은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할리우드라면 저예산영화 수준도 안 되지만, 부가시장조차 크지 않은 한국에서는 만만찮은 규모다. 위험부담이 큰 만큼 철저한 기획과 분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관객의 기호와 취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100억 영화에서는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돈 들인 티 팍팍..화려한 '액션'
2002년 제작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한국 100억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13만명이 들어 5억만을 건진 최악의 사례로 남긴 했지만, 이 때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액션은 한국 100억 영화의 공통점으로 남았다. 2004년 나란히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는 물론 '괴물', '태풍' 등 대부분의 100억 영화들은 액션물의 재미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2011년의 100억영화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순간을 절절하게 그려낸 '고지전', 폭탄을 싣고 도심을 질주하는 퀵서비스맨의 스피디한 액션을 담은 '퀵', 심해저 괴생물체와 석유시추선 대원들의 사투를 담은 '7광구', 병자호란이 배경인 액션활극 '최종병기 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저마다의 개성만점 액션을 내세웠다. 연말 개봉을 앞둔 전쟁물 '마이웨이' 또한 마찬가지다.
올해 100억 영화를 내놓은 한 투자제작사 관계자는 "액션물은 세대, 성별을 불문하고 가장 폭넓은 관객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고, 특성상 다른 장르에 비해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다"며 "100억대 액션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고 설명했다.
◆웃겨야 본다..개성만점 '코믹조연'
액션이라고 비장하기만 해서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계산이 작용해서일까? 여러 100억영화에서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코믹 조연들이 발견된다. 재미있는 점은 특히 흥행에서 성공한 대작 영화들의 경우 코믹 조연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조연이 아니더라도 웃음의 포인트들이 곳곳에 있어, 긴장감을 덜어주고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2009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에서는 김인권이 어리바리 코믹 조연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공형진이 그 역할을 했다. 2006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괴물'에서는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주연들이 돌아가며 웃음의 포인트를 살렸다.
2011년의 100억 영화에는 어떤 명품조연들이 웃음을 안기며 맹활약했을까. '고지전'의 코미디 담당은 전천후 연기자 류승수. '퀵'에서는 '해운대'에 이어 김인권이 고창석과 코믹 콤비를 이뤘다. '7광구'에서는 박철민 송새벽 콤비가 웃음을 담당한다.
◆대작은 남자영화? '홍일점' 맹활약
굳이 100억 영화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제작되는 대형 영화들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모니', '써니' 등 잇단 흥행영화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자영화는 안된다'는 오랜 불신이 충무로에 깔려있을 만큼 충무로의 남자영화 사랑은 유난스럽다. 액션물의 경우는 남성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진다. 100억 영화도 과언은 아니다.
덕분에 한국의 100억 영화는 대개 남자들이 주·조연을 맡고 홍일점 여배우가 한 명 포함되는 구도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실미도'에는 홍일점은 커녕 출연명단에 올라갈 여배우가 잠깐 등장하는 간호사 한 명이이었다. 그러나 최근으로 올 수록 홍일점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퀵'에서는 폭탄헬멧을 쓴 아이돌 그룹 멤버 강예원이 여주인공 몫을 톡톡히 해낸다. 울어도 눈물이 나는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인다. '고지전'에서는 인민군 저격수로 등장하는 홍일점 김옥빈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7광구'는 홍일점 여배우가 원톱 여주인공으로 올라선 경우다. '해운대' 1000만 관객을 이끌었던 하지원은 괴물과 싸우는 여전사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슈를 잡아라!
사회적인 이슈와 결합을 시도하는 것 또한 100억 영화의 오랜 전통이나 다름없다. 영화 마케터들은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영화 자체가 당대의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대 주 관객층을 넘어 중년층을 극장가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영화의 오락성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당시엔 100억 영화가 제작됐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이슈였다. '실미도'는 여기에 북파공작원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며 흥행세를 더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할리우드 못잖은 전쟁 블록버스터로 애국심을 자극했다. '괴물' 당시엔 환경문제, 반미감정 등이 화제였고, 재난영화 '해운대'의 경우 동남아시아 쓰나미가 직접적인 모티프로 작용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올 여름의 100억 영화는 상대적으로 이같은 이슈몰이에서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리어 시리즈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 초반 거센 로봇 신드롬을 몰고 온 '트랜스포머3'이 외적인 이슈을 선점하는 모양새다.
한국전쟁 휴전협상일인 지난 27일 100만 관객을 돌파한 전쟁영화 '고지전'이 그나마 근접한 편. 치고 달리는 액션물 '퀵', 본격 3D 크리처 무비를 표방한 '7광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연상시키는 충실한 오락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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