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저는 고층빌딩입니다.
사실 저는 전혀 안녕하지 못합니다. 영화 관계자 여러분, 다들 왜 그러시는 건데요? 왜 영화만 시작했다하면 저를 그렇게나 못살게 구시는 겁니까? 제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건가요?
26일 개봉하는 조스 웨던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만 해도 그래요. 외계 군대가 지구에 쳐들어오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그 하고 많은 타깃 중에서 왜 하필이면 저 고층빌딩만 집중 공략하는 겁니까? 날아와서 부딪히는 건 기본이고 그 흉칙하게 생긴 비행체 날개로 제 유리창들은 다 박살내버리니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녹색괴물 헐크는 더 합니다. 아무리 슈퍼히어로면 뭐 합니까, 제 발끝부터 허리춤, 머리 꼭대기까지 쿵쿵 밟아대고 퍽퍽 구멍내고 외계비행체 냅다 이웃에 있는 제 친구 고층빌딩에 집어던지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토르의 망치, 아이언맨의 빔, 호크아이의 화살 등이 아주 겹겹으로 저를 향해 몰려옵니다. 나, 원.
한국영화도 저를 무지 괴롭힌 적이 있었죠. 심형래 감독인가? 하여간 거대한 이무기가 나온 '디 워'라는 영화 말입니다. 지하 주차장에 얌전히 있던 자동차들을 쌍으로 부숴버린 것은 기본이고, 제 몸뚱아리 칭칭 감아 올라 제 머리 꼭대기에 있던 헬기 이착륙장을 노려볼 때의 그 섬뜩함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온갖 괴수들이 아주 신나서 저를 이리 패고 저리 패더군요.
괴수라면 더 있습니다. '킹콩'에선 그 키 큰 원숭이가 성큼성큼 저를 아주 잘 올라타더군요. 꼭대기 피뢰침까지 올라가 고함을 지르는 꼴이라니. 아니, 그 번개로부터 저를 보호해주는 피뢰침은 왜 잡고 난리에요? 가뜩이나 킹콩 몸무게 때문에 그리고 이 킹콩 잡으러 밀어닥친 인간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하긴 원래 살던 그 섬에는 이런 피뢰침 같은 게 없었을 테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같은 킹콩이 여주인공만 바꿔 3번(1933년, 1976년, 2005년)이나 저를 올라탄 건 너-무-합-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형사 존 맥클레인으로 4번째 나온 '다이하드4.0'에서는 아예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 좀 넓은 데 가서 싸우면 안되나요? 최신예 전투기가 밖에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무모한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까, 아무리 존 맥클레인이라도 그렇지. 댁들 아날로그 액션 덕분에 제 유리창은 물론 철근 골격까지 아주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이 해(1997년) 1편을 개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SF 로봇 액션 '트랜스포머'는 2011년 3편에서 온갖 꾀를 내어 저를 무참히 괴롭혔습니다. 지구의 운명을 건 디셉티콘 대 오토봇 빅 매치, 아주 좋아요. 그런데 제발 사막 같은 데서 하면 안됩니까. 커다란 송곳 뱀장어처럼 생긴 디셉티콘은 제 허리를 푹 찔러 이리저리 구멍 내더니 결국 저를 반토막 내더군요. 파편 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재즈라는 오토봇도 사람 구한다고 저를 발로 꽝꽝꽝(정확히 3번입니다) 차기나 하고.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아예 불까지 내서 저를 홀라당 태워버리는 인간들이 있어요. 이건 좀 오래된 영화 같은데, '타워링'이라고요. 왜 그 스티브 맥퀸과 폴 뉴먼이 나왔던 1977년 재난영화 말이에요. 당시만 해도 전세계 초고층 빌딩이었던 저를, 그 한심한 '전기배선 문제'로 태워버리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는 또 그것도 화재진압의 방법이라고 옥상에 있던 물탱크까지 폭파시켜버려 저를 홀딱 젖게 만들고. 비 맞은 여인의 마스카라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영화감독님들, 도대체 키 큰 게 무슨 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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