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력범죄와 관련된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요즘, 분통이 터지는 것은 범죄자들의 잔혹한 범죄 때문만은 아니다. 경찰의 안일한 대처와 사법부의 비상식적 판결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 붓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최근 영화계에는 '사적복수'가 뜨거운 화두다. 성폭행 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서는 '돈 크라이 마미'와 '공정사회', 연쇄 살인범에게 가족, 연인을 잃은 이들의 사연이 담긴 '내가 살인범이다', 광주민주항쟁 학살의 주범인 '그'를 처단하기 위한 작전을 담은 '26년'까지, '보통 사람들'의 복수를 표현한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공소시효가 지난 후 살인범이 버젓이 매스컴에 등장한다면 피해자들의 기분은 어떨까? 지난 8일 개봉한 '내가 살인범이다'의 이야기다. 영화는 단순히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액션 스릴러로만 보기에는 사회적으로 던지는 화두가 무겁다. 강력범죄 공소시효의 허점과 옐로 저널리즘, 공권력의 무능 등 생각해 볼 법한 문제들을 버무렸다.
공소시효가 끝난 지 2년, 연쇄살인마 이두석(박시후 분)은 자신의 살인담을 그린 책을 출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를 본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이 처단하지 못한 이두석을 자신들의 손으로 벌하고자 계획을 세운다. 이두석을 노리는 것은 피해자 가족뿐만이 아니다. 15년 전 이두석과 악연이 있었던 형사 최형구(정재영 분)도 공소시효가 끝난 이 사건에 처절하게 매달린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돈 크라이 마미'와 내년 개봉 예정인 '공정사회'는 성폭행을 당한 딸을 둔 엄마의 복수를 그린다. 물론 그 복수의 방법은 다르지만 성폭행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수사의 허점에서 느끼는 분노를 담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한다.
'돈 크라이 마미' 속 가해자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나는 사법부의 말도 안 되는 판결은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이미 수차례 성범죄 재판에서 정신이상, 음주 등의 이유로 감형이 이루어져왔고, 이에 수많은 국민들이 격분했다. '공정사회' 속의 무관심한 형사 마동석의 경우도 전혀 없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성폭행 피해를 신고했지만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있다. 두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분개하는 관객들에게 사적 복수를 통해 묘한 시원함을 준다.
광주민주항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1980년 광주의 아픔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우기는 그 사람은 여전히 대한민국 땅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영화 '26년'은 청산하지 못한 그의 죄를 보통사람의 손으로 벌하는 과정을 그린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전찬일 평론가는 "올해 사적복수를 다룬 영화가 많다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전 사회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방증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적복수'의 과정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공권력이 응당 해야 할 일에 개인이 나서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영화에서 이어지고 있는 사적복수, 현실에서 행해질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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