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과 영화 제작자 정승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두 여인은 아이러니하게 암이 인연을 맺어줬다. 영화 작업을 함께 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암을 치료하던 중 우연히 만났다.
서로가 각자 병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보다 깊고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었다. 워낙 사람 좋은 두 사람인데다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나누는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왁자지껄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이준익 감독 집에 모여 수다로 긴긴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아픔을 웃음으로 나눴던 두 사람이다. 슬픔이 비집고 들어가기엔 정승혜 대표와 장진영은 너무도 열정적이었다. 기자는 그래서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차마 이 이야기를 글로 전하지 못했다. 정승혜 대표가 앞서 세상을 떠나자 장진영의 슬픔이 워낙 컸기도 했다.
암이란 병을 겪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병수발을 드는 가족조차도 다 나눌 순 없다. 후회에 후회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기자도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정승혜 대표와 장진영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이 와인잔을 들고 깔깔 거리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흐뭇해질 것이다. 슬픔보다 흐뭇함으로 고인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속으로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 든 건 임윤택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울랄라세션의 팀장 임윤택이 지난 11일 하늘로 떠났다. 15년 동안 무명시절을 겪었던 임윤택은 2011년 '슈퍼스타K'로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위암 투병 중이었지만 그의 노래는 힘찼고, 춤은 신명났다.
임윤택이 부른 노래 중 단 하나 짙은 슬픔이 드리운 곡은 '슈퍼스타K3'에서 불렀던 '서쪽하늘'이었다. 영화 '청연' OST 수록곡이다. '청연'은 고 장진영이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이기도 했다. 임윤택은 "장진영은 나와 같은 병을 앓았고 그 분 역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배우로서 몸이 망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수술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평생 무대에서 노래해야 하는 녀석이다"고 말했었다.
임윤택이 세상을 떠난 뒤 '서쪽하늘'이 다시 사람들에게 울려 퍼지고 있다. 사람들은 임윤택을 서쪽하늘로 보낸다며 추모하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장진영은 '청연'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장진영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역할을 맡았지만 일제부역자를 미화했다는 한심하고 고의성 짙은 글로 누군가가 불을 지피자 매도하는 글들이 쏟아졌었다.
임윤택은 아픔을 팔았다는 비난에 이어 암조차 거짓이라는 일부 네티즌의 악플에 시달렸다. 그의 사망 소식에도 여전히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픔에 초연해지기까지, 그리고 웃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승혜 대표는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 그리고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녀의 씩씩함에 전염돼 앞에 있는 사람이 암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어느새 잊게 만들었다.
임윤택은 춤과 노래, 그리고 씩씩함으로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가 '슈퍼스타K3'에서 3개월 동안 보여준 열정은 말로 전할 수 없는 위로를 세상에 줬다.
세상에 '힐링팔이'가 넘쳐난다. 너나할 것 없이 힐링을 팔아댄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 울고 싶을 때 울라고 속삭여 준다. 차고 넘치는 '힐링팔이'들 속에 임윤택은 삶으로, 노래로, 춤으로, 위로해준 진정한 힐러다. 그를 떠올리면 눈물보단 열정이 먼저 찾아온다.
임윤택의 주례를 섰고 임종을 지켜본 소설가 이외수는 트위터에 "그는 비록 짧았으나, 누구보다 진실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누구보다 위대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뜨겁게 뜨겁게 살았습니다"라고 적었다.
돌이켜보면 장진영, 정승혜, 그리고 임윤택은 누구보다 뜨겁게 뜨겁게 살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6개월만에 꿈에 찾아왔다. 너무 반가워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잠에서 깬 게 서러워 못내 울었다.
이제 뜨겁게 산 그들을 울음 대신 웃음으로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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