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철수 감독을 기리며

발행:
전찬일 영화평론가
故박철수 ⓒ사진공동취재단
故박철수 ⓒ사진공동취재단


나이를 불문하고 죽은 이를 애도하는 글을 쓴다는 건 선뜻 내키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감상적이고 일방적 덕담으로 치닫기 십상인 탓이다.


이러저런 우려에도 고(故) 박철수 감독에 대한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않은 연유는 감독과 평론가로서 지난 10년 간 유지해온 개인적 친분을 넘어, 보잘 것 없는 내 글이 고인의 영화세계는 물론 품성 등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제고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에서다.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 등일 공산이 크겠지만, 고인이 되자마자 박철수 감독을 가리켜 ‘거장’ 운운하는 숱한 언론매체들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거장이라고 여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평가는 향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보다는 그가 정체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시도를 멈추지 않는 ‘문제적 감독’이며, 위 영화들이 그만의 시도적 문제작으로서 손색없다는 확신에서였다. 프로그래머로서 평론가로서 관객으로서…내가 박철수 그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건 박철수 특유의 문제성과 시도성 때문이었다.


지난 20년 간 나는 문제제기로서 영화평론, 준-역사 즉 기록으로서 평론, 과정이자 태도로서 글쓰기를 추구해왔다. 그런 내 영화 및 삶의 노선에 박철수 감독은 거의 전적으로 부합했다. 내가 그를 성원했던 건 이렇듯 개인적 인연을 뛰어넘는 더 큰 명분이 존재해서였다.


50대는커녕 40대에 이미 적잖은 감독들이 도태되곤 하는 이 각박한 영화 현실에서, 60대 중반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감독들은 정지영과 더불어 박철수 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80세를 바라보면서도 현역 정신을 포기하지 않는 임권택 감독의 뒤를 이을 주인공들도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자유정신과 생명력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의 또 다른 덕목들이다. <어미>(1985), <안개기둥>(1986), <접시꽃 당신>(1988), <물위를 걷는 여자>(1990), <오세암>(1990) 등의 대중 인기 감독을 거쳐, <301 302>(1995) 이후 문제적 작가 감독으로 변신을 꾀한 것부터가 그 증거다. 과거 스타일·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및 영화 환경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 자기만의 독자적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까.


아는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과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1996)를 필두로 1990년대 후반을 거치며 봇물처럼 터져 나올 후배 감독들의 주목할 만한 문제작들의 문제의식 및 영화적 미덕들을 <301 302>이 선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감독들인 그들의 롤모델이 박철수였다는 것은 그저 수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부단히 자기 영화의 색깔과 방식을 지켜가는 그들이 고맙”단다. “예전에는 내가 그들의 롤모델이었는데 요즘은 그들이 나의 롤모델이”란다. 그 얼마나 열려 있으며 자유로우며 생명력 있는 태도인가!


"<녹색의자>(2003) 이전처럼 소재가 다양하지 않다, 성에 국한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아직 성에 대한 판타지가 덜 깨졌기 때문"이란다. 60대 중반의 감독치곤 지나치게 치기 어리며 순진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최근의 행보에 크고 작은 불만을 느꼈던 이들에겐 특히 나 더. 또래의 또 다른 누구는 사법부 및 언론의 타락한 현실을 고발하고, 고문을 통한 인권 유린을 애국 등의 논리로 포장했던 우리네 시대의 폭력성에 화살을 날려 크고 작은 환호를 받고 있거늘,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이 땅의 대표적 중견 감독이 젊은 애들의 성 문제에만 천착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는 없을까? 그 성과 성 심리에 대한 집착 역시 그 나름의 열려 있음, 자유정신, 생명력 등의 산물이었다고. 그보다 2년 연배인 박범신 작가가 <은교>를 통해 생물학적 나이 들어감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처럼, 물리적 나이로 삶의 모든 걸 재단하는 세상의 폭거에 저항했던 거라고.


박철수. 어쩌면 그는 에로티즘을 죽음과 종교와 연결시켰던 금기와 위반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의 사유를 영화적으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죽음은 삶의 이면이니까. 에로티즘, 달리 말해 성애는 삶과 죽음의 연장이니까……


전찬일(영화 평론가/전주대 영화영상 전공 객원교수/부산국제영화제 마켓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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