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진정성 있어야 색안경 안쓰고 봐준다"(인터뷰)

발행:
전형화 기자
이경규/사진=구혜정 기자
이경규/사진=구혜정 기자

1992년 서울극장이었다. 이경규는 '복수혈전'을 보러 온 몇 안 되는 관객들에게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말고 봐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났다. 한동안 이경규가 영화를 한다는 건 코미디 소재였다.


온갖 비웃음 속에서 묵묵히 영화를 준비해오던 이경규는 2007년 '복면달호'를 내놓은 데 이어 6년만에 '전국노래자랑'을 선보였다. 지난 1일 개봉한 '전국노래자랑'은 극장을 휩쓴 '아이언맨3' 열풍에도 박스오피스 2위를 지키며 선전하고 있다. 비록 6일까지 50만명을 동원했지만 이경규가 영화에 담은 진정성은 관객과 통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이 기대만큼은 아니고 예상만큼 관객이 들고 있는데.


▶푸하하. 욕심을 많이 부리면 무리가 온다. '아이언맨3'란 특수한 상황이 닥쳐서 스크린이 장악되는 바람에 기대보다는 적게 드는 게 사실이다. 영화를 보러가도 온통 '아이언맨3'가 상영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영화계에선 여느 영화제작자라면 '아이언맨3'에 일주일 뒤로 개봉하고, 같은 배급사에서 2주일 뒤에 새로운 영화를 배급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전국노래자랑'을 개봉시키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많은데.


▶뒤에 하나 앞에 하나, 뒤에 때려서 망하면 될 핑계도 없지 않나. 위험한 장사가 남는 장사라고도 하고. 앞에 개봉해서 입선전 면에선 유리할 수도 있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고. 수업료를 많이 지불하다보니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 이경규가 영화로 할 이야기가 참 많아 보이는데.


▶그동안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를 보고 느낀 바가 많다. 미국영화는 미국이란 나라가 꼭 인류를 구한다. '아이언맨'도 그런 이야기 아닌가. 한국영화를 보면 억지설정도 많아 보였다. '전국노래자랑'을 하면서 감독이랑 우리 영화는 억지로 울리려 하지 말자고 했다. 힘주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웃고 울게 하자고 했다. 그런 게 콘셉트였다.


-등장인물 중에 첫 사랑을 잊지 못해 술 마시고 노래하는 캐릭터가 이경규와 겹쳐 보이더라. 다른 인물들 속에서도 이경규가 많이 보이고.


▶한 잔 더해, 필로 가는 거야. 그렇다. 또 김용건이 '여심'에 얼마나 투자했는데 어떻게든 성공해보려 하는 모습도 닮았고. 김인권이 못 이룬 가수 꿈을 이루려 하는 것도 영화인으로 내 이야기를 담았다. 김인권이 폴 포츠 대사하는 게 꼭 내 이야기다. 시사회 때 많이 울었다.


-서울극장에서 '복수혈전' 무대인사를 하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한 게 기억난다. 영화인 이경규는 편견과 선입견에 쌓여 있다고 생각하나.


▶어릴 때 코미디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또 코미디언들이 왜 성공하면 전부 어린이 영화를 만들까 싶기도 했고. 처음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복수혈전'을 보면서 동생이 죽는 장면에서도 사람들이 웃더라. 안 웃기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웃더라.


'복면달호' 시나리오를 갖고 3년을 돌아다니다가 차태현이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차태현 팬클럽에서 들고 일어나더라. 선입견과 편견을 두 번 극복했더니 어느 정도 진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 무대인사를 가면 격려도 많이 해주신다.


-'복면달호' 때는 철저히 영화 뒤에 숨더니 이번에는 전면에 나섰다. 자신감인가, 위기감인가.


▶솔직히 말하면 위기감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복면달호' 때는 영화에 피해를 줄까봐 숨었다. '전국노래자랑'은 즐거운 영화니깐 전면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작품에는 완전히 숨을 것이다. 아예 제작자 이름도 바꿀까 생각 중이다. 이번에 전면에 나서는 건 불안감이 많이 작용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보단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맞다. 한 사람으로만 끌고 가기엔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걸 다 못 버리겠더라. 영화 초창기니깐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싶기도 하고. 다음에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생각도 있다.


-김인권이 등장하는 첫 장면을 봤을 때는 영화가 산으로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점점 진정성이 느껴지고.


▶사실 원래 앞부분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영 아니다 싶어서 편집했다. 김인권 장면은 원래 뒤에 있는 걸 앞에 끌어다 쓴 것이다. 감독과 어차피 앞에 30분은 인물소개니깐 그냥 가자고 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승부를 걸자고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경규의 '전국노래자랑'이지만 보고나면 오현경의 '전국노래자랑'이라고 할 만큼 오현경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였는데.


▶동의한다. 처음부터 그 역할에 오현경 선생님을 놓고 썼다. 인물만 갖다 놓으면 그림이 돼야 했다. 그 연배 다른 분들은 갖자 놓으면 TV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기도 너무 잘해야 했고.

이경규/사진=구혜정 기자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돈도 그렇고 예우도 상당했다던데.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진정성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코미디언들이 지금까지 영화 하면서 생긴 이미지도 불식 시켜야 했고, 영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더 많이 들어 갈수도 있지만 더 많이 돌아올 수도 있지 않나. 영화 또 하려면 좋은 소문도 내야하고.(웃음) 신용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터지면 보너스도 많이 줄 생각이다.


-방송과 영화, 투 잡인데. 둘 다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멍하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다. 그래도 멍한 상태가 좋은 것 같다. 한 곳에 올인하면 망한다. 오히려 이곳에서 얻은 좋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서 또 쓰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꼰대 느낌에서 더 많이 듣는 느낌인 것 같다. 영화를 다시 시작한 때와 겹쳐지기도 하고.


▶제 또래가 말이 많다. 화석처럼 굳어진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영화 하면서 감독 이야기도 듣고, 스태프 이야기도 듣고 많이 들었다. '힐링캠프'를 하면서 듣는 연습도 많이 하고.


-액션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그런 영화도 하고 싶나.


▶'쿵푸허슬'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복수혈전2'도 하고 싶고. 와이어 없이 '옹박'처럼 몸으로 하는 액션 영화를 하고 싶다.


-10년 동안 영화사를 차려놓고 2편을 만들었다. 많은 돈을 썼을텐데.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보다 더 들어갔다. 난 개발비 받았다가 안 되면 돌려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런 걸 깨끗하게 해야 색안경을 안 쓰고 봐준다고 생각했다.


-방송과 영화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 같은데.


▶둘 다 같다. 신용과 성실이다. 괴팍하기도 하지만 신용과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은 직업이고 영화는 꿈인가.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난 강연 가면 꿈은 가지지 말라고 한다. 인생이 너무 힘들다.


-꿈을 가져서 행복하지 않나.


▶힘들다. 그리고 즐겁다.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잘 나왔을 때 희열을 느낀다. 의외의 장면에서 관객이 펑 터질 때 쾌감을 느낀다. 그래도 힘들다.(웃음)


-언젠가 다시 연출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삶의 허무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 같은 영화. 언젠가가 아니라 조만간 꼭 할 것이다.


-60세에 신인감독상을 받길 바란다.


▶내가 상복이 있어서 탈 것이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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