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66회 칸국제영화제가 26일 폐막해 영화 잔치 막을 내렸다.
올해 칸영화제는 튀니지 출신 프랑스 감독인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에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는 줄리 마로의 그래픽 노블 '블루 앤젤'을 원작으로 삼은 두 레즈비언 여성의 사랑 이야기. 레아 세이두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가 주인공을 맡아 강도 높은 베드신을 선보였다.
영화제 막바지에 강력한 다크호스로 등장,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코엔 형제에 다시 황금종려상을 안길지 관심을 모았던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심사위원 대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영화는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로 단편경쟁부문상을 수상, 체면치례를 했다. '세이프'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과 도박에 중독된 사내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 작품. 문 감독은 2011년 '불멸의 사나이'가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지 2년만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단 한편의 장편도 칸 영화제에 진출시키지 못한 한국 영화는 문 감독의 수상으로 구겨졌던 자존심을 겨우 세웠다.
올해 한국영화는 영화제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을 포함해 단 한편의 장편영화가 초청되지 못했다. 한국영화가 단편 부문을 제외하고 공식 부문이나 감독주간, 비평가주간에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것은 2001년 이후 12년 만이다.
영화계에선 올해 한국영화가 칸에서 전멸하다시피 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칸에 초청받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애써 자위하지만 한국영화계가 최근 작가,예술영화를 갈수록 외면하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그 여파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란 자조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이 거론되던 한국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기덕 감독이 '뫼비우스' 등이었다. '설국열차'는 국내외 개봉 일정 및 후반작업 등을 이유로 출품을 포기했고,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역시 후반작업 미비로 출품을 하지 않았다. 그 외에 애니메이션과 중단편 등 출품이 유력하다고 예상됐던 몇몇 영화들이 전부 칸에서 외면 받았다.
올해 칸 경쟁부문에 일본영화가 2편, 중국영화가 1편 초청된 것과는 딴판이다. 아시아 영화는 올해 칸에서 중국 지아장커 감독이 '터치 오브 신'으로 각본상을,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라이크 파더, 라이크 선'을 내놓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수상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알려진 이란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 '과거'에서 주연을 맡은 아르헨티나 출신 배우 베레니스 베조는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가장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인 신인 감독에게 돌아가는 황금카메라상도 아시아 감독의 차지였다. '일로 일로'를 선보인 싱가포르 감독 안소니 챈이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하루 전 주목할만한 시선상은 캄보디아 출신의 감독 리티 판의 '미싱 픽처(The Missing Picture)'가 수상한 터다.
아시아 영화가 세계 예술영화 흐름을 주도하는 칸영화제에서 줄줄이 수상의 영예를 안을 때 한동안 아시아 영화 흐름을 이끈 한국영화는 잔치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한 영화제작자는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김기덕 임상수 등을 잇는 감독들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영화 투자를 외면하는 최근 영화계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예술성이 높다고 인정받는 한국영화는 장르 안에서 작가주의 감성을 드러냈다. 장르영화가 주로 투자를 받는 만큼 박찬욱 봉준호 등은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그 안에서 예술성 높은 영화를 만들어왔다. 제작자와 투자자도 그런 작품에 대한 투자를 한동안 아끼지 않았다. 한동안 세계영화계에서 한국영화는 잔혹하고 이야기가 강렬하다는 평을 들었던 것도 장르 안에서 인정받는 감독들의 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한국영화지만 2006년 한국영화 거품이 터진 이후 긴 어려움의 터널에 들어가면서 점점 작가주의 영화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었다. 마침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대표감독들이 해외영화로 눈을 돌린 것도 궤를 같이 한다. 투자배급사들이 갈수록 안전한 상업영화에 투자를 하고, 기획부터 참여하면서 점점 감독들이 작가로서 역량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을 맞게 됐다.
홍상수 김기덕 감독처럼 독립적으로 제작하는 영화들 외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감독들조차 투자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영화관객 1억 시대를 맞았지만 정작 다양한 영화들은 죽어가고 있는 것. 이창동감독은 '시'로 칸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을 받을 때 "세상에 이런 영화들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한국영화는 감독들과 배우들이 미국과 중국 등 최고 영화시장으로 보다 많이 진출하고 있다. 마냥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정작 한국영화계는 갈수록 다양성을 잃어하고 있으며, 속으로 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1억 관객 시대를 경축하고, 한국영화 최초로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탔다고 자축한 게 불과 1년이 채 안됐다.
올해 칸에서 한국영화가 외면 받은 건 한국영화의 위기를 알린 경종이다. 경고하는 종이 울렸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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