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16일 제시와 셀린이 처음 만났을때

발행:
김관명 기자
[김관명칼럼]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사진=영화 스틸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사진=영화 스틸

16만409명. 한 영화 관객이 개봉 후 한 달 가까이 되도록 이 정도 들었다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지난달 22일 개봉해 16일 현재 전국에서 불과 30개 스크린에서만 상영되고 있다. 15일 관객은 3600여명(이상 영진위 집계). 그러니 이 '비포 미드나잇'이라는 영화는 국내에서는 큰 폭발력도 화제도 못 일으킨 작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포 선라이즈'(1995년. 국내에선 1996년 3월30일 개봉), '비포 선셋'(2004년)에 이어 '비포 미드나잇'까지, 꼭 9년에 한 번씩 나온 이 3부작을 빠지지 않고 본 관객은 생각이 다르다. 20대 때 처음 만나 동화 같은 사랑을 나누고(비포 선라이즈), 30대가 돼 9년만에 재회한(비포 선셋) 이 제시-셀린 커플의 40대 때 삶과 이야기(비포 미드나잇)는 바로 영화와 함께, 두 주연 배우 에단 호크(1970년생)-줄리 델피(1969년생)와 함께 나이 먹은 수많은 팬들의 삶과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포' 3부작 열혈 팬들에게 오늘(2013년 6월16일)은 각별한 날일 게다. 꼭 20년 전인 1994년 6월16일, 두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으니까. 그랬다. 파리로 가는 유럽횡단열차 안에서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났더랬다. 시끄러운 독일인 부부의 싸움 통에 뒷좌석으로 옮긴 셀린, 통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제시와 눈이 마주쳤더랬다. 몇 마디 나눈 이들은 얼마 안 가 비엔나 역에 내려 황홀한 하룻밤을, 제목 그대로 해가 뜰 때까지 보냈더랬다. 이 모든 게 1994년 6월16일 벌어졌다.


'비포 선라이즈' 개봉 당시 한국에서는 마침 유럽 배낭여행이 마지막 절정(IMF사태 1년 전)에 달했을 때였고, 이 영화를 본 수많은 젊은이들은 '비엔나의 하룻밤'을 기대하며 유럽횡단열차에 몸을 싣곤 했다. 또한 20대 에단 호크의 로맨틱하면서도 나쁜 남자 스타일의 개성과, 줄리 델피의 청순한 외모와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품성은 관객 저마다의 '이상형'이자 '롤모델'이기도 했다. 될성부른 소설가였던 제시의 자유분방함과, 역시 될성부른 시민운동가였던 셀린의 꿈을 향한 열정. 이 둘이 서로 맞닿아 짜릿짜릿 불꽃을 튀겼을 때, 관객은 제 일처럼 황홀해했다.


"오늘이 6월16일이니까 꼭 6개월 후, 이곳 비엔나역 9번 승강장에서 만나"라는 제시의 다급한 제안. 그 결과가 궁금했던 팬들은 꼭 9년이 지나서야,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또다시 메가폰을 잡은 '비포 선셋'을 보고서야 모든 걸 알게 됐다. 제시와 셀린은 만나지 못했다는 것,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셀린이 그날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 제시는 이런 그녀를 비엔나역에서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이 두 사람은 9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파리에서 재회했다는 것. 셀린의 집에서 셀린이 들려준 자작 러브송에 20대 뜨거웠던 시절을 떠올린 건 비단 제시만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온 덕에 20대 추억마저 통째로 내려놨던 30대 관객 모두가 제시이자 셀린이었다.


그리고 2013년의 '비포 미드나잇'. 에단 호크-줄리 델피-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다시 만난 이 영화는 "..그래서 공주님은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되었더랍니다"로 끝나는 그 수많은 동화에 "정말로?"라고 독하게 물었다. 과연 결혼만 하면, 과연 없으면 못살 것처럼 사랑했던 두 남녀가 같이 살기만 하면 두 사람은 저절로 오래오래 행복해지는 건지..


다시 9년이 흐른 후 제시와 셀리, 예쁜 쌍둥이 딸까지 뒀고 멋진 그리스 해변 도시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좋은 사람, 좋은 음식, 좋은 환경. 그럼에도 이들은 원 신 원 테이크로 잡은 지리한 대화를 통해 갈등의 골을 대놓고 드러낸다. 전처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미국으로 날아가 곁에서 돌봐주고 싶은 제시, 환경운동가로서 자신의 삶을 그런 이유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은 셀린. 이런 두 사람에게는 모든 게 '불만'이다. 상대방의 말투, 상대방의 습관, 상대방의 세계관, 심지어 상대방의 잠자리 스타일까지 모두..!


셀린과 제시가 이처럼 서로 때문에 힘들어한 것은 꼭 '현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이들에게는 1994년 6월16일부터 시작된 20년 '과거'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에 예상 못했던 지금의 '현재'가 몹시도 가벼웠고 몹시도 초라해 보였을 게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자신들의 '미래'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처참해 보였을 게다. 그래서 셀린은 제시에게 "지금의 나를 그 열차 안에서 처음 봤더라도 말을 걸었을 거야?"라고 물은 게 아니었을까. 이는 또한 이 빛나는 3부작이 수많은 선량한 관객들에 던진 진지한 물음이 아니었을까. "1994년 6월16일, 당신이 처음 말을 걸었던 그 상대와는 지금 어떤가요? 아니, 당신은 2013년 오늘 6월16일을 20년 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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