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 1억 관객시대를 열어 신 르네상스 열풍을 일으킨 2012년을 뒤로 하고 힘차게 출발한 2013년이 벌써 절반이 지나나고 있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는 6월17일까지 5363만 3030명을 동원했다. 지난해 못지않은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영화 열풍은 올해도 가시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상반기에 한국영화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위기의 신호이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 주요 사건을 정리했다.
#'7번방의 선물' '은밀하게 위대하게' 돌풍..10대와 4050 관객 재발견
용구(류승룡)와 동구(김수현) 두 바보가 상반기 극장가를 뒤흔들었다. 올 상반기 영화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7번방의 선물' 흥행이었다. 1월23일 개봉한 '7번방의 선물'은 1280만명을 동원했다. 마른 걸레처럼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라는 평단의 비아냥 에도 불구하고 '7번방의 선물' 흥행은 엄청났다.
앞서 '레미제라블'과 '박수건달'에 이은 흥행이라 '7번방의 선물'은 힐링무비라고 분류되기도 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보단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고찰이 많았다. 이성보단 감성에 자극 받고 싶어 하는 관객이 많았다는 뜻. 40~50대가 새로운 관객층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6월5일 개봉해 530만명을 가뿐히 넘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10대들을 새삼 조명하게 만든 영화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평단의 호평은 받지 못했으나 관객들은 극장에 몰려들고 있다. 김수현의 팬덤, 꽃미남 주인공의 도래 등을 이유로 꼽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10대 관객층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주목받았다.
10대와 4050 관객 재발견은 올 상반기 영화계 가장 큰 화두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성을 주요 관객으로 설정해왔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과 '은밀하게 위대하게' 흥행은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한국관객 지평을 넓혔다. 두 영화 흥행은 한국영화가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도, 타켓 맞춤용 영화들이 양산될 수도 있는 계기가 됐다.
#잇단 제한상영가, 등급 논란..영화계 뿔났다
올 상반기에는 등급 관련 논란이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누적된 등급 관련 불만이 폭발했다. 급기야 지난 17일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로 분류된 데 대해 박선이 영등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홀리모터스'를 비롯해 '자가당착' '무게' 등이 제한상영가를 받은 데 이은 것이라 더욱 논란이 불거졌다. 국내에 제한상영가 극장이 없는 만큼 제한상영가 판정이 사실상 국내 상영금지나 다름없기에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재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일었다.
등급 분류가 원칙이 없다는 지적도 일었다. 신수원 감독은 교육 문제 심각성을 다룬 '명왕성'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제너레이션14플러스 부문에 초청돼 특별언급상을 받은 영화가 국내에선 청소년이 관람조차 할 수 없다는 걸 납득할 수 없다는 것. 상업영화도 '연애의 온도'가 청소년관람불가인 반면 '고령화가족'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많은 영화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전설의 주먹'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영등위는 지난해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이 결코 많지 않고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계 불만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라 제도 개선 내지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의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 상생협약은 맺었지만..갑을 관계, 스크린 독과점 여전
한국영화계는 지난 4월 그동안 이해관계가 엇갈려 난항을 빚었던 현장스태프 처우 개선 및 스크린 독과점 해소를 위해 협약을 마련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26개 단체가 참여한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의회'가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 부속 합의를 마련했다. 스크린 독과점 개선과 현장 스태프 처우 개선 등 다양한 합의가 이뤄졌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이 대기업이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제작 참여 금지를 담은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을 추진해 영화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은 영화계 상생을 위한 것이지만 아직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상생협약 을 발표하고 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언맨3'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졌다. 스크린독과점은 한국영화도 비켜가지 않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무려 13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 '말아톤' 정윤철 감독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영화계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화나눔협동조합을 추진, 대기업 위주 현행 배급시스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CGV는 그동안 배급사와 극장이 5대5로 나누고 있는 극장요금 부율을 5.5대 4.5로 양보하는 안을 마련했다.
#칸영화제, 한국영화 12년만에 장편영화 전멸
올해 한국영화는 제66회 칸영화제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을 포함해 단 한편의 장편영화도 초청되지 못했다. 한국영화가 단편 부문을 제외하고 공식 부문이나 감독주간, 비평가주간에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것은 2001년 이후 12년 만이다.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가 단편경쟁부문상을 수상해 간신히 체면치례를 했다.
영화계에선 올해 한국영화가 칸에서 전멸하다시피 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칸에 초청받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애써 자위하지만 한국영화계가 최근 작가, 예술영화를 갈수록 외면하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그 여파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란 자조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화계에선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김기덕 임상수 등을 잇는 감독들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영화 투자를 외면하는 최근 영화계 환경이라는 지적이 많다. 투자배급사들이 갈수록 안전한 상업영화에 투자를 하고, 기획부터 참여하면서 점점 감독들이 작가로서 역량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을 맞게 됐다.
최근 한국영화는 감독들과 배우, 협업 등으로 미국과 중국 등 최고 영화시장으로 보다 많이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영화계는 갈수록 다양성을 잃어하고 있으며, 속으로 곪고 있다. 올해 칸영화제 전멸은 그에 대한 경고다.
#네이버 별점 테러
올 상반기 영화계 화두 중 하나는 네이버 별점 테러였다. 각 영화들에 정치적인 성향이나 네티즌 놀이문화로 집단적으로 1점 주기가 횡횡했다. '영웅'에 출연한 김보성에 대한 장난 겸 찬사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7번방의 선물' '신세계' '사이코메트리' '파파로티'에 1점이 쏟아졌다. 이런 일부 네티즌의 별점 테러는 각 영화들의 평점을 떨어뜨렸다. 각 영화 관계자들은 일부 네티즌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영화들이 피해를 본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슬'이나 '26년' 등에 대해선 정치적인 성향을 띤 네티즌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미나 문방구'는 표절시비를 거론하는 네티즌들로 별점 폭탄을 맞았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1점 주기도 네티즌의 선택"이라며 수수방관했다. 영화계는 "포털이 영화 광고로 많은 수입을 올리면서 정작 영화계에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김수현 송중기 유아인 이민기..20대 배우 세대교체
'은밀하게 위대하게' 흥행은 영화계 20대 배우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지난해 '늑대소년' 송중기와 '완득이' 유아인과 더불어 김수현이 20대 주인공 배우 대열에 안착하게 된 것.
그동안 한국영화는 설경구, 송강호, 김윤석 등 이른바 '설송김'이 주인공을 맡아 흥행을 이끌었다. 하정우 강동원 등 30대 배우들도 맹활약을 펼쳤지만 과거 20대가 주인공을 맡았던 시대가 도래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세대교체 바람은 '연애의 온도' 이민기까지 포함해 새로운 20대 배우군을 형성시켰다. 이들은 한국영화에 새로운 피로 상당한 활력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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