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이호재 감독 "잉여라도 괜찮아"(인터뷰)

발행:
안이슬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인터뷰
이호재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이호재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고 생산적인 활동에 몸담지 않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이 말이 어느새 영화계에도 스며들었다.


단돈 80만 원으로 무작정 유럽으로 날아가 호스텔 홍보영상계의 스타가 된 서플러스(이호재, 하비(하승엽), 이현학, 김휘)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지난 28일 개봉했다. 네 잉여를 이끈 서플러스의 리더 이호재 감독(28)과 만나 그들의 여정을 곱씹었다.


팀 이름부터 잉여롭다. 서플러스(surplus), 한국어로 잉여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물은 것은 아니지만 답을 듣고 보니 역시나 '잉여' 그 자체의 의미였다.


"출발하기 직전에 팀 이름을 지었어요. 유럽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잉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영어로 잉여인 서플러스로 했죠."


군복무중인 동생들 대신 열심히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호재 감독. 그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잉여란 무엇인가"였다. 내친김에 물어봤다. 잉여란 무엇인가?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잉여라는 것이다.


"아마 잉여가 아닌 사람들이 시작했다면 이 아이템으로 할리우드에 갈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보통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할 텐데 저희는 대체로 '대충 해~'하고 누워있고 놀았죠. 다들 욕심이 없어요. 커리어에 대한 집착도 없고요. 욕심이 없으니 치열하게 경쟁을 할 필요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성숙한 잉여라고 생각해요(웃음)."


이호재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지난 2009년 출발해 2010년 9월까지 1년을 꽉 채운 유럽 일주. 마구잡이로 찍어놓은 영상들을 편집하고 개봉까지 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물론 그 틈에도 잉여로 보낸 시간이 있었지만.


"여행 다녀와서 1년 동안은 열심히 놀았어요.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다들 게임에만 빠져서 서버에서 유명해질 정도였죠. 그러다가 현학이가 군대를 가고 작업실을 없앴어요. 다들 군대를 가고 나서 저는 이것저것 홍보영상 작업 같은걸 하면서 후반작업비용을 마련했죠. 올 초에 편집을 끝내고 스크리너를 배급사에 돌렸어요. 지금도 좀 거기에 갇혀있는 느낌이에요. 영화에 제가 나오니까 아직도 유럽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여정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호스텔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숙식을 해결하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출발했지만 수중에 있는 돈은 80만 원 뿐이었고 영상 의뢰는 생각만큼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몸이 힘든 순간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추운데 계속 밖에서 자고 하다 보니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가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가진 돈이 다 떨어졌을 때였죠. 로마에 왔는데도 연락이 없으니 이 프로젝트가 실패 했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잉여라고 했던가. 이호재 감독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아르코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열의를 보이는 순간 나머지 세 잉여 멤버들과 갈등이 시작됐다. 영화 속에는 이호재 감독에 대한 멤버들의 불만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물론 그 갈등은 한국에 돌아와 촬영 분을 돌려보면서 알게 됐다.


"충격적이었어요. 시간상으로도 거의 여행 마지막에 있던 일이라 편집을 하면서도 거의 마지막에 봤거든요. 처음에는 보자마자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렇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내색 한 번 안하고 끝까지 잘 해줬다고 생각해서 고마운 마음도 동시에 들고. 물론 하비한테 전화해서 욕도 하고 그랬어요(웃음)."


이호재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욕심이 없는 멤버들과 아르코 뮤직비디오만큼은 욕심을 부렸던 이호재 감독. 반대로 이호재 감독도 불만이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당시에는 불만이 있었던 적도 있어요. 뭐든지 너무 더디고 조금만 싫어도 안하려고 하니까요. 그렇지만 팀으로 생각하면 욕심이 없기 때문에 더 즐거운 쪽으로 갈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욕심이 없다는 것도 노력으로 되는 부분 같기도 해요(웃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잉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행동으로 옮겼고, 다음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스스로 잉여라고 칭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또 한 번 '잉여론'이 펼쳐졌다.


"잉여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뭔가 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하려고 하면 다들 비난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 출발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말도 안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걸 해내니까 '이런 잉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하고 놀라는 거죠. 저를 찾는 사람이 생기는 걸 보면서 잉여들도 어떤 환경에서 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구나 느꼈어요."


2015년 모든 멤버들이 군필자가 되고 나면 서플러스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악기를 들고 떠나는 음악 여행이다. 전 세계를 도는 것이 목표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확실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거 배우면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음악 공부도 하고 영상작업도 이어가고요. 좀 더 인원을 늘려 팀을 꾸려서 복합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문화적인 혜택을 못 받는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고,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세계를 돌면서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도움을 받았던 분들에게 보답고 하고 싶고요. 목적지는 일단 인도에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최종 목표요? 막연히 생각하는 건 공연을 하는 거예요(웃음)."


이제는 동생들도 2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호재 감독은 20대의 끝물에 와있다. 평생 서플러스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는 약속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호재 감독은 서플러스는 언제나 다시 뭉칠 수 있는 팀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조금씩은 각자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상 여행이 끝나고 나서는 각자 흩어져서 일 했으니까요. 언제나 다시 뭉칠 수 있고 언제나 흩어질 수 있는 팀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성숙한 잉여 이호재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또 다른 젊은 잉여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대답을 단순했다. "잉여라도 괜찮다!"


안이슬 기자 drunken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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