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비우스', '신의 선물' 등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은우(34)가 '일대일', '가부키초 러브호텔', '산다', '경주'까지 무려 네 편의 영화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일본감독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은우는 극 중 일본에서 성산업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인 유학생 역을 맡았다. 일본영화의 한국인 캐릭터라는 부담감을 안고 다른 현장,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영화를 처음 대중에 보이게 된 이은우를 부산에서 만났다.
"사실 두려워요. 다른 언어, 다른 환경에서 한 작품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과연 제가 어떻게 해냈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제가 맡은 이혜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요. 사랑하는 남자에게 직업을 숨기고 있고,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이 남자는 더 함께 있고 싶어 하고요. 갈림길에 서 있는 인물이에요."
'가부키초 러브호텔'과의 인연,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작됐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뫼비우스'를 본 관계자가 히로키 감독에게 이은우를 추천했던 것. 감독은 이은우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후 한국으로 날아와 캐스팅을 추진했다.
'가부키초 러브호텔'은 한 러브호텔을 중심으로 그 곳에 있는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일본 대지진, 원전폭발, 청년실업, 이민자, 성매매와 포르노 등 일본 사회의 문제들을 각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그렸다.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었지만 선뜻 하겠다고 나서기는 힘든 역할이었다. 외국 작품에서 그려지는 한국인의 모습에 다소 민감한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해 더욱 그랬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10명 중 9명은 하지 말라고 했었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 시기에 저에게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 가장 좋은 작품을 선택한 거예요. 만약 저 선택에 화살을 던지면 그렇게 얘기 할래요' 하고요."
처음부터 무조건 그 인물이 되어야겠다는 욕심은 버렸다.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씩 스며들어가며 자신만의 혜나를 완성했다.
"사실 저도 고민했던 것이 내가 정말 돈이 없다면 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저 스스로 납득이 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 스며들게 했어요. 아이스버킷의 물을 뒤집어쓰는 것처럼 한 번에 역할을 뒤집어쓰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히로키 감독은 이은우의 어떤 면에 반해서 한국까지 날아와 출연을 제안했을까? 이은우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일단 '뫼비우스'에 나오는 배우라 관심이 갔다고 하셨어요. 사진을 보고나서 실물을 봤는데 그 갭이 크더래요. 그래서 이 친구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셨어요. 아,물론 저에게 직접 얘기해주신 적은 없었어요."
일본에서 작업했지만 촬영 시스템의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오래 함께해온 가족이 자신을 향해 팔을 벌려주는 느낌이었다고 이은우는 고마움을 표했다.
"히로키 감독님의 팀이 연출부부터 메이크업팀, 헤어팀까지 다들 굉장히 가족 같은 팀이래요. 전 그 곳에 들어간 거예요. 그들의 친절함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들 제가 팀을 잘 만났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몇십년을 함께한 팀에 제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뭐랄까, 팔을 벌리고 있으면서 저를 안아주는 느낌이었어요."
히로키 감독과 인연은 단편영화로 또 한 번 이어졌다. 지난 1월에 일본에서 히로키 감독의 '익스큐즈미'가 바로 그것. 이은우의 발랄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1월에 일본에 또 다녀왔어요. '은우야, 1월에 또 들어와' 하시더라고요. 단편영화를 찍는데 불러주셨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대생을 연기했어요. 이 나이에 여대생을(웃음). 만화를 영상으로 옮기는 하나의 프로젝트였어요. 엄청 뛰고 춤까지 추고, 다음 날 병원 갈 뻔했어요."
'일대일', '산다', '뫼비우스', '발광하는 현대사', '신의 선물' 등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이은우. 다음 작품에서는 그의 어떤 매력을 만나게 될까? 이은우 또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병들어 죽고, 맞아죽는 역할만 했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이 센 역할을 한다고들 하시는데, 변화하는 과도기라는 것이 있잖아요. 저도 다음에는 제가 어떤 것을 하게 될지 궁금해요. 어떤 감독님이 저를 어떻게 써주실지."
한 때는 연기를 그만 두어야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이은우는 배우의 길을 택했고, 그 결과 다시 한 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와 있다. 이은우에게 앞으로의 보여주고 싶은 이은우의 모습을 물었다.
"저, 잘할 자신 있는데 캐스팅 좀 부탁드릴게요(웃음). 지금도 물론 많이 찾아주시지만 더 많이! '뫼비우스'처럼 더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장기로 좋을 것 같고, 아니면 코믹스럽고 푼수기 있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코미디도 잘 할 수 있어요. '뫼비우스'가 워낙 세니까 '얘가 이런 걸 하겠어?'하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전 음식이 있으면 다 잘 먹을 자신이 있어요. 어떤 음식이든지!"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