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속에선 이미 주인공..'완소배우' 이성민의 원톱 도전기(인터뷰)

발행:
김현록 기자
영화 '로봇, 소리'의 이성민 인터뷰
영화 '로봇, 소리'의 이성민 / 사진=임성균 기자
영화 '로봇, 소리'의 이성민 / 사진=임성균 기자


'골든타임'의 올곧은 응급외과의 최인혁, '브레인' 속 애증의 악당 고재학, '변호인'의 사회부 기자, '군도'의 의적떼 대장, '화정'의 충신 이덕형… 그리고 '미생'의 국민 샐러리맨 오상식. 배우 이성민(48)을 설명하는 건 그가 지금껏 그려 온 수많은 캐릭터 중 몇몇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을 듯한 얼굴, 그래서 누구든 될 수 있는 배우 이성민은 비중과 역할을 가리지 않고 다작하며 신뢰를 쌓아 왔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는 이성민이 처음으로 메인타이틀을 맡은 작품. 언론시사회부터 주인공으로서의 부담감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이젠 다 내려놓은 듯 짐짓 평온한 표정이었다.


'로봇, 소리'는 실종된 딸을 찾아 10년째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 아빠 해관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찾아 기억하는 로봇 '소리'를 만나게 된 해관은 이번엔 딸을 찾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알고 보면 '소리'는 도청에 특화된 감시 위성. 미국 나사와 국정원이 해관과 소리 일행을 따라붙지만 순순이 '소리'를 내줄 수 없는 해관은 우여곡절 속에 로봇과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10년 전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딸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리고 끝내 관객의 마음에도 훅 다가가 가슴 찡한 순간을 안긴다.


실제로도 딸을 둔 중년의 아버지인 이성민은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과 정서를 바탕으로 SF와 휴먼 드라마를 오가는 '로봇, 소리' 속 해관의 마음에 어려움 없이 녹아 들어간 모습이다. 부족한 예산 덕에 할리우드 영화 같은 특수효과를 뽑아내진 못했지만 상상만은 크게 갖고 작품에 임했단다.


이성민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우리나라 보통의 중년 남자,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유연하지 않은 캐릭터"라며 "그런 사람이 첨단 로봇을 만났을 때 어떨까 생각했고, 일반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의 상대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다. 해관과 로봇 '소리'의 로드무비나 다름없는 '로봇, 소리'에서 이성민의 상대는 기껏해야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돌리는 게 고작인 로봇이었다. 대사도 안 입혀진 로봇과의 연기라니, 그 때문에 캐스팅 단계에서 손사래를 친 배우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성민에게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 '로봇, 소리'의 이성민과 로봇 '소리' / 사진=임성균 기자


"CG처리를 위해 녹색 옷 입은 사람과 연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잖아요. 형체가 있는 기계라 힘들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시도였어요. 상대가 무생물이에요. 어차피 사람과 연기하는 게 아니고 로봇과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표정도 동작도 없는 로봇과 연기한다는 설정이라 기대하는 것도 애초에 없었어요. 대신 이런 게 있죠. 저 친구와 내가 어떻게 조화가 생길까 상상하고 연기해야 하니까. 그래서 상하좌우 요 동작들과 어떻게 앙상블을 만들까 고민했어요. 탁 치면 고개가 팩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합에서 가끔 오작동이 나긴 하더라고요. 그것 말고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의 아버지가 '스타워즈' R2D2를 닮은 로봇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야 했다. 이성민이 중점을 둔 부분도 "이런 인물이 어떻게 로봇을 믿고 소통하게 되느냐"였다. 치밀한 접근 덕일까. 영화 속 분홍색 후드 티셔츠를 입은 '소리'를 휠체어에 태운 이성민이 거리를 누비는 장면들은 SF 명작 'E.T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이성민과 로봇 '소리'의 관계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주인과 애완동물 같고, 종국에는 아버지와 딸처럼 다가온다. 이 모습은 극중 해관과 실제 딸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며 깊은 감흥을 안긴다. "내 가족, 주변 상황을 생각하며 연기한 적은 없었다"던 이성민도 "이번에는 잘 그렇게 하게 되더라"라고 털어놨다.


"제가 해관처럼은 못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부모 마음이 이해되고, 자식 안 낳아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우리 딸은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 같고 그러네요. 그게 그렇게 돼요. 아이가 자고 있으면 조용히 들어가 이불 덮어주는 게 부모 마음인 것 같아요. 그 바탕이 사랑이겠죠. 아들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딸은 특별한 것 같아요. 딸이랑 싸운 적이 있어요. 15살이랑 거의 50살 된 아저씨가 말싸움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별거 아닌 걸 가지고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쟤는 무슨 배짱으로 나이 많은 아빠랑 싸우지?' 설명이 안 되는데 묘한 게 있어요. 그게 또 딸이 엄마랑 싸울 땐 다르더라고요. 딸도 여자인가 봐요. 여자랑 싸울 땐 무조건 져요."


영화 '로봇, 소리'의 이성민 / 사진=임성균 기자

'로봇, 소리'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만큼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는 것이 '대구 지하철 참사'다. 2003년 2월 29일 대구 중앙로역에서 벌어진 화재로 무려 192명이 숨졌고 148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6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영화는 십 수 년이 지난 비극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낸다. 이호재 감독도, 이성민도 혹여 피해자들에게 누를 끼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대목이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이성민은 실제 사고 현장과 추모비를 찾아갔던 일을 털어놨다.


"촬영 전 감독님, 배우들과 같이 대구로 내려가 추모비에 헌화를 하고 조심스럽게 촬영을 시작했어요. 기자시사회 전에도 대구에 갔다가 혼자 추모비에 다녀왔어요. 추모비에 미확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쓰여 있어요. 그것이 참 인상에 남더라고요. 중앙로역에도 간 적이 있어요. 깊은 입구를 내려가는데 참 먹먹하더라고요. 추모비가 있는 공원에 가면 당시 사고 차량이 보관돼 있어요. 설명은 들었는데 끔찍해 차마 자세히 볼 수가 없었어요. 영화도 더 조심스럽게 다뤘죠. 부상자들이 실려 오는 병원 신은 첫 편집에서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사고 지하철 자연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찍었고요. 더 참혹하게 묘사할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님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신경을 썼더라고요."


이성민 / 사진=임성균 기자

개봉이 다가오니 주연배우의 부담감도 커져 간다. 이성민은 얼마 전 절친한 배우 이선균과 통화를 하며 "의지할 데가 없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한다. 다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인정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게 이성민의 각오다. 지난 미디어데이 때 수십명의 기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아 '나 봤냐'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 아닌 자랑을 했더랬다.


"솔직한 마음은 '망하면 안 되는데' 이거예요. 다른 영화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절실하게 드는 건 처음이에요. 기자시사회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런 적이 거의 없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집사람이 코를 골고 자는데 어찌나 짜증이 나는지.(웃음) 누웠다가 소파에 갔다가 들어왔다가 계속 그랬어요. 얼마 전에 새 드라마 '기억' 촬영을 시작하는데 어제는 종일 드라마 대본을 봤어요. 그렇게라도 딴 데 정신을 팔아야지 안 그러면 계속 같은 짓만 할 것 같아서요. 딸 친구가 놀러왔기에 '재밌다고 소문내 달라'고 부탁하고 그랬어요.(웃음)"


'내가 주인공인데 누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함께한 이희준, 이하늬, 전혜진에게도 하나하나 감사를 전했다. "하나하나 캐스팅이 될 때마다 너무 고마웠다"고 털어놓는 그의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은 지금껏 왜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왜 그런 포근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비중에 상관없이 보는 이들에겐 늘 가장 큰 인물로 다가오던 배우, 이미 수차례 주연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조연이며 감초 캐릭터를 마다하지 않는 특별한 배우 이성민의 새로운 시작이 부디 관객에게 다시 다가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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