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세는 '영화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실화'다. 요즘 극장가를 돌아보면 더욱 실감난다. 실화를 영화화한, 혹은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대 실화, 얼마만큼 같고 다를까. 비교해 봤다.
'스포트라이트'(감독 톰 맥카시)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의 작품상·각본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미국 메사추세츠의 카톨릭 교회에서 10년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 그리고 이를 은폐한 교회를 고발·보도한 일간지보스톤 글로브의 탐사취재팀 이야기다. 제목인 '스포트라이트'는 바로 이 팀의 이름이다.
실화는?▶'스포트라이트'의 싱크로율은 이들 실화영화 중 최고 수준. 카톨릭 교회와의 전쟁과도 같은 보도를 준비하며 벌어지는 영화 속 취재팀의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했다. 보스톤글로브의 편집국장부터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 심지어 미셸 개러비디언 변호사, 문제의 로 추기경까지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취재 및 보도 시점도 실제 사건에 맞췄을뿐더러 인물의 생김새까지 판박이 느낌. 팀장 로비의 백발을 그대로 살린 마이클 키튼, 편집국장 마티의 구레나룻까지 닮은 리브 슈라이버, 마이클의 일자 앞머리까지 따라 한 마크 러팔로는 실제 인물과 비교하면 더 기가 막힌다. 실제 사건에서 문제의 시발점이 된 지오간 신부는 10세 아동의 성추행 사건으로 재판받다 30년간 무려 130명의 아동을 추행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2001년 신임 편집국장 마티의 지시로 스포트라이트 팀이 취재에 착수했고 2002년 1월 스포트라이트팀은 첫 보도가 나왔다. 이들은 이후 무려 300개에 이르는 관련 기사를 썼고, 사건을 은폐했던 로 추기경은 그 해 12월 결국 사임했다. 그 해 퓰리처상의 주인공은 '스포트라이트' 팀이었다.
'룸'(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
7년의 감금, 그리고 탈출. '룸'은 17살에 납치돼 7년간 감금 생활을 한 어머니 조이와 그 아들 잭의 탈출, 그리고 이후의 삶을 담은 영화다. 조이 역 브리 라슨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단박에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신성으로 떠올랐다. 극의 화자인 잭 역의 제이콥 트렘블레이 또한 극을 이끌다시피 하며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실화는?▶영화의 납치, 감금은 세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하다. 그러나 '룸'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은 더 경악할 수준이다. 2008년 요제프 프리츨 사건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친딸 감금 사건이 바탕. 18살 나이에 아버지에 의해 지하에 감금된 피해자 엘리자베스는 24년간을 갇혀 7명의 아이(이들 중 1명은 죽고 3명은 프리츨이 양자로 입양)를 낳고 살다 극적으로 구출됐다. 검거 당시 73세였던 요제프 프리츨은 피해자의 큰 딸이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갔다가 의료기록이 없는 것을 수상히 여긴 의사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요제프의 폭력적이고 철두철미한 성향 탓에 이웃은 물론이고 엘리자베스의 친어머니인 그의 아내조차 딸의 감금 사실을 몰랐다고. 특히 갇혀 지낸 엘리자베스의 아이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발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작가 엠마 도노휴는 이 끔찍한 실화를 모티프로 원작 소설 '룸'을 썼으며, 영화의 설정은 모두 이를 바탕으로 했다.
'헝거'(감독 스티브 맥퀸)
'헝거'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 보비 샌즈를 주인공으로 삼은 실화극이다.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IRA의 일원으로 옥중에서도 투쟁을 계속하던 그는 1981년 3월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끝내 목숨을 잃는다. 영화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던진 보비 샌즈의 결심과 그 마지막 순간을 담는다.
실화는?▶보비 샌즈는 1977년 테러리스트 혐의로 14년형을 언도받고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메이즈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IRA 수감자들은 정치범 지위를 요구하며 죄수복을 거부하는 '담요투쟁', 샤워를 거부하고 배설물 등을 내보내는 불결투쟁 등을 벌였으나 당시 대처 수상은 협상을 거부했다. 27세의 보비 샌즈를 필두로 1981년 3월 1일 시작한 2차 단식 투쟁(Hunger Strike)에는 수십 명의 수감자들이 이에 동참했다. 보비 샌즈는 66일째가 되던 날 결국 숨졌고, 이후에도 9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보비 샌즈는 단식 기간 중 하원의원에 옥중 출마해 당선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그를 죽게 버려두지 말라'는 시위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다소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을 뿐 끝까지 IRA 수감자의 정치범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 법을 개정해 수감자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감독 자비에 지아놀리)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은 1920년대 프랑스 파리,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이자 클래식 음악 후원자인 남작 부인 마가렛트는 사실 어마어마한 음치. 그러나 그 스스로만 사실을 모른 채 집안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호기심을 느낀 기자가 쓴 농반진반의 기사에 크게 감동한 마가렛트는 진짜 공연을 벌이겠다고 나선다. 능청스럽고도 섬세한 연기를 펼친 여주인공은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실화는?▶영화의 바탕은 역사상 최악의 소프라노로 불리는 플로렌스 젠킨스(1868~1944)다. 미국에서 부호의 딸로 태어난 그는 완강한 아버지 때문에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망과 이혼 이후 직접 비용을 대고 설립한 클럽에서 성악가로 활동했다.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녹음 파일을 통해 음치이자 박치인 그녀의 노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플로렌스 젠킨스는 주위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를 위대한 성악가라고 확신했다고 전해진다. 늘 소수 앞에서만 노래했는데, 무대에서는 직접 디자인한 화려한 무대의상을 고집했다고. 음치 소프라노로 도리어 유명인사가 된 플로렌스 젠킨스는 1944년 10월에는 결국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입장권은 수 주 전에 매진사례를 빚었다. 그가 공연 한 달 뒤 76세 나이로 숨지자 가혹한 비평에 충격을 받은 탓이라는 설도 돌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실명으로 다룬 다른 영국 영화도 만들어져 개봉을 앞뒀다. 메릴 스트립이 플로렌스 젠킨스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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