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추문 이후 칩거 중인 엄태웅의 복귀작으로 더 주목받았지만, '포크레인'은 그런 호기심거리로 휘발되긴 아까운 영화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고 '붉은가족' 이주형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시선과 화법이 담긴 또 다른 5.18 영화다. 투박한 스타일에 직접적인 메시지를 녹였다. 그 주인공은 광주의 시민이 아닌 진압군이다.
포크레인 기사 강일은 굴삭 작업 중 주인없는 유골을 발견한다. 20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었던 그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는 그 길로 포크레인을 몰고 당시 동료와 상사를 차례로 찾아간다. 그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단 하나 "왜 그때 우리를 그 곳에 보냈습니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한 완전히 다른 반응과 답변을 내놓는다.
'포크레인'엔 녹슨 못이 박힌 몽둥이처럼 김기덕 감독의 인장이 확연하게 찍혀 있다. 그의 영화에서 어떻게 강일이 포크레인에 의지해 20년 전 군에서 만나 헤어진 인연들을 콕콕 집어 찾아내는지는 중요치 않다. 말하려는 바, 하고자 하는 일이 중요하다. '포크레인'엔 그가 '일대일'로 은유했던 5.18의 트라우마, 다하지 못한 단죄가 여전하다. 20년이 지난 뒤에도 광주의 기억에 갇혀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현실인듯 판타지인듯 그려낸 것은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아이러니를 웃프게 그렸던 이주형 감독의 솜씨다.
영화는 무고한 이들을 향해 진압봉을 휘둘러야 했던 진압군조차 광주의 피해자이며, 이를 책임져야 할 이는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탱크와도 같은 궤도를 지녔으며, 가는 길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는 낡은 포크레인은 광주에 대한 은유이자, 진압군 출신으로서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사는 강일 자체로 보인다.
'엄포스'로 불릴 시절부터 입을 꾹 닫은 채 말 못할 사연들을 표정과 몸짓으로 그려내곤 했던 엄태웅은 "처음부터 엄태웅이어야 했다"는 감독의 변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강일과 잘 어울린다. 강일의 여정에 함께하는 묵직한 배우들 중에서도 상처 입은 독사 같은 박세준, 뻔뻔한 정치인 손병호가 특히 인상적이다.
'포크레인'은 여름 대전의 한 복판, 또 다른 5.18 영화 '택시운전사'에 한 주 앞서 관객과 만난다. 공식석상에 서지 못한 주인공 엄태웅 없이 홀로 언론배급시사회에 나섰던 이주형 감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내는 이 시점에서 더 각성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7월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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