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일이 스크린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왕이다. 서자로 반정에 성공해 왕이 됐다가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에 고립된 다음 오랑캐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조선의 16대 왕 인조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쉬운 캐릭터도 아니었다. 박해일은 영화 '남한산성' 출연을 두 차례 고사했었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 그리고 오랑캐와 화친하느니 죽기로 싸우자는 척화파 김상헌, 삶이 있어야 죽음도 있다며 화친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의 대립을 그린 영화. 황동혁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 '남한산성'에 박해일을 인조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박해일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심 끝에 '남한산성'에 뛰어든 박해일은 "그 뒤로는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남한산성'에서 그의 눈 앞에는 이병헌과 김윤석이 앉아 있었다. 박해일은 불을 뿜으며 연기하는 두 사람의 거울이 됐으며, 그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반사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해일은 "두 선배에게 연기를 배우는 교육현장"이라고 겸손해 했지만, 그 거울과 반사판은 박해일이기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남한산성' 출연 제안을 고사했다. 인조와 대장장이 날쇠 역을 제안받고 날쇠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도 하고. 그런데 왜 인조로 '남한산성'을 하기로 했나.
▶(황동혁 감독님이)처음에 두 역할을 제안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두 캐릭터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다시 감독님이 인조 역을 제안했다. 시나리오를 본 느낌은 너무 담백하게 잘 정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읽은 원작 톤을 잘 집약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다른 작품을 촬영하기도 했고, ('남한산성'을 하기에는)시간적인 여유와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왜 하게 됐는지 이유를 말하자면 결국은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설득당한 느낌이지만 정통사극에 제작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김윤석 이병헌 선배 등 쟁쟁한 배우들이 캐스팅돼 있었기에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역사 속 인조도 그랬고, 원작도 그랬고, 인조는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이병헌, 김윤석이 맡은 최명길, 김상헌보다 두드러지는 캐릭터가 아니고. 그런 점 때문에 주저한 건 아닌가.
▶그런 측면은 생각 못했다. 우선 원작에 대한 기대, 황동혁 감독에 대한 믿음, 시나리오에 완성도를 고려했다. 또 이병헌, 김윤석, 송영창 등 그간 작품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선배들과 한 번에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인조는 김윤석과 이병헌의 연기를 거울처럼 받아내는 역할인데.
▶거울이란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대립각을 세우는 두 충신들이 나를 향해 말을 던져오면 난 그걸 되받는 역할이다. 툭 던지는 말로 둘의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리거나 한숨을 푹푹 쉬게 만드는, 관객들에게 그런 걸 느끼게 하는 역할이다. 처음 인조 역할을 생각할 때부터 이건 리액션이다, 그들의 액션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좌우의 가운데 앉아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서 더욱 어려웠을 법한데.
▶가장 많은 대사가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 보고 어쩌라는 거냐"였다. 의상도 조상경 의상감독이 워낙 고증을 철저하게 해서 옷이 완전히 몸을 덮었다.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었다. 말과 감정 밖에 드러내도록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어나는 게 큰 일인 것 같은 인물이니깐.
-이병헌과 김윤석이 쏟아내는 말과 연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처음 접한 배우이자 관객인데. 그 감정을 받아내야 했고.
▶저도 배우잖아요. 두 선배는 성질이 다른 건 맞다. 저랑도 다른 게 맞고. 각자가 입장을 대변하면서 화학적인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저런 역할을 맡게 된다면 나라면 나스러운 게 뭘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둘의 연기에 데일 것 같고, 얼어붙을 것 같았다. 내게는 (연기) 교육현장 같았다. 진심이다. 둘이 너무 색도 다르고 톤도 다르다. 윤석 선배는 라이브한 기운을 쏟아내고, 병헌 선배는 절제된 톤으로 폭탄을 던진다. 두 선배의 좋은 부분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병헌과 김윤석이 인조를 바라보며 불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장면은 촬영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날 선 느낌이었다던데.
▶여러 번 반복되면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었다. 대사들도 많고. 그걸 무릎을 꿇고 해야 하고. 감독님은 입김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창문도 다 열도록 했다. 배우들이 다 한 칼에 끝내고 싶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자기 실수로 NG가 나면 스스로에게 굉장히 날카로웠다. 나는 대사를 카메라 밖에서 해줘야 했는데 그냥 대본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대로 감정을 담아서 해야 했기에 엄청 긴장했다.
-'남한산성'의 하이라이트는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인데. 인조 역할로선 가장 드러내야 할 부분이 있는 장면이고.
▶내 입장에선 고맙게도 '남한산성'은 거의 이야기 순서대로 찍으려고 노력했다. 그 장면은 최후반부에 찍었다. 청나라 군인들로 출연한 배우들을 보려 그쪽 촬영장에 놀러 갔었다. 촬영 중반쯤이었다. 마침 삼배구고두례 장면을 위한 9층 단 세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사하는 현장에 혼자 가봤다. 내가 절을 해야 할 위치에 서서 청나라 황제가 앉아있을 맨 윗단을 바라봤다. 높긴 높더라. 그 장면을 상상해봤다. 너무 높아서 황제는 잘 안 보일 테고, 내 뒤로는 신하들이 있을 테다. 그 뒤로 청나라 군사들이 포위할 테고. 치욕과 굴욕을 어떻게 보여야 할까 생각했다. 촬영할 때는 감정을 끓어 올리기보다는 절제하는 톤으로 가려 했다. 감독님도 그걸 원했고. 또 내가 울자니 이병헌 선배도 우는 데 왕이 신하랑 같이 울면 그렇잖아요. 실제 역사에선 인조가 너무 울었다더라.
-야사에선 인조가 머리를 찧어 피가 흘렀다고 돼 있는데.
▶참조를 하려 다른 분이 사극에서 그 장면을 연기한 걸 찾아봤다. 감정을 세게 하면서 피를 흘리더라. 반면 황동혁 감독은 그렇게 안 하려 했다. 일단 배우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 했다. 테스트 촬영할 때 머리를 땅에 되자 흙이 묻더라. 그걸 감독님이 좋아하더라. 내 땅, 내 흙이 묻는 걸. 나도 피보다 흙이 좋았다. 피가 더 세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흙이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소화했는데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하나.
▶시나리오를 호기심 있게 읽고 감독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100명이 넘는 스태프와 감독, 그리고 상대배우 덕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한계가 있으니깐.
-원작자인 김훈 작가와 인조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 적은 있나.
▶아직 없다. 그렇지 않아도 VIP시사회를 할 때 무대인사를 하는 데 눈 앞에 김훈 작가님이 앉아 있는 게 보이더라. 인사를 해야 하는데 순간 말문이 막히더라. 배우로서 원작자에게 속내를 다 보여드리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 연기를 어떻게 봤는지, 개봉 이후 시간이 허락되면 만나뵙고 말씀을 듣고 싶다.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대사는 많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 캐릭터를 대변하는 대사가 있다면.
▶인조 캐릭터를 대변 한다기보다 그 상황을 대변하는 대사가 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서로 싸우는구나"란 대사다.
-영의정 김류 역으로 출연한 송영창과 주고받는 대사가 사뭇 웃음을 주는데. 실소랄지.
▶시나리오에 충실했다. 송영창 선배와 주고받는 대사 자체가 남한산성에 오기 전 인조와 김류의 관계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반정을 같이 했고. 그런 관계들. 그래서 실소랄지, 그런 게 관객에게 전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고수가 지난 13일 셋째 아들을 얻었는데. 박해일도 올 1월 7년만에 둘째 딸을 얻었고.
▶고수의 득남은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도 고수도 '남한산성'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또 하나의 생명을 얻었다.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차기작은. TV드라마는 앞으로도 계획은 없나.
▶단편 드라마를 한 번 했었다. 제안은 받는데 더 하고 싶은 영화 시나리오를 선택하다보니 계속 영화만 하게 됐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