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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프레지던트' 박정희 신화의 담담한 종언

발행:
전형화 기자
[리뷰] 미스 프레지던트
사진


이른 새벽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4배를 한다. 한복을 곱게 갈아입고 망건을 쓰고 사진을 향해 네 번 절을 한다. 사진의 주인공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청주에 사는 농부 조육형씨의 일과다. 매일 아침 일어나 절을 한 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한다. 새마을 운동으로 가난했던 이 나라 사람들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4배를 하는 건 그 옛날 왕에 대한 예우와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울산에 사는 김종효씨 부부. 굶주리기가 일쑤였던 그 시절,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다. 고 육영수 여사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바로 이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김재환 감독은 박정희 대통령 37주기를 앞둔, 그러니깐 2016년 10월26일을 고대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를 담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은인으로, 구세주로, 어버이로 여기는 사람들. 박 대통령 동상에 절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박 대통령에게 기도하면 만사가 잘 되게 해준다고 순전하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목도하는 순간을 담담하게 담았다.


김재환 감독은 일찍이 맛집 프로그램의 실체를 파헤친 '트루맛쇼', 2012년에서 2007년 대선을 뒤돌아보는 'MB의 추억', 한국 대형 기독교회의 문제를 짚은 '퀴어바디스' 등 여러 다큐멘터리로 시대를 짚었다.


삐딱이랄까, MBC PD출신인 김 감독은 소위 잘 팔리는 이야기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맛집 두들기는 프로그램이 인기 절정이던 시절엔 그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짚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곤 왜 2007년에 그렇게 MB에 열광했는지를 짚었다. 어머니가 기독교회 권사님인 김 감독은 모두가 "아멘"이라고 외치는 교회에 이건 아니지 않냐고 외쳤다.


다큐멘터리는, 특히 한국에서 팔리는 사회 다큐멘터리는, 죄책감을 덜어주거나 선명한 자기편을 갖고 있을 때 잘 팔리기 마련이다. 김재환 감독은 그런 길을 마다하고 애써 좁은 길을 계속 택했다.


'미스 프레지던트'도 마찬가지. 정권이 바뀌고, 노무현 대통령 추억팔이와 MB를 겨냥한 다큐멘터리가 잘 팔린다. 그런데 김 감독은 이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쫓았다. 비웃지도, 비난하지도, 우스개로 만들지도 않는다. 단죄하거나 조롱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마음들을 쫓는다. 당신들은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랑합니까,라고 묻는다.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를 모두 담지만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박정희 신화를 쫓아간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중의적이다. 신화의 '미스'(Myth), 미혼인 여성을 가리키는 '미스'(Miss).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 신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나는 순간들을, 박정희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묵묵히 담았다.


이 묵묵함은 미덕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래와 함께 마냥 행복한 어린 영애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부모를 잃고 집을 떠난 영애, 그리고 다시 대통령으로 집에 돌아온 그녀, 탄핵으로 집을 떠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담는다.


그 현대사가 집약된 한 사람 이야기에 다시 박정희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됐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라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나쁜 여자 때문에 죄 없는 대통령이 그리됐다며 눈물짓는 사람들을 그렸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온갖 미디어에서 탄핵 당시 절규하는 사람들을 적폐청산 대상처럼 담은 것과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장례식 때 소복 입고 울던 사람들과 연결해서 그린다. 조롱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다고 담는다.


이 시선이 다르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그렇게 박정희 신화의 몰락을 담담하고 다르게 담는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이런 태도로, 양쪽으로 갈린 세상 속에서 양쪽 모두에 환영 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신화의 종언을, 담담히 담아낸 건 분명 용감하고 의미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에 개봉하는 것도 용기 있고 의미 깊다.


10월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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