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최선을 다한 악역" '김윤석이 말하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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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록 기자
영화 '1987'의 김윤석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1987'의 김윤석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1987'(감독 정준환)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된 뜨거운 1987년의 이야기다. 22살 대학생의 부당한 죽음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폭압적인 권력, 그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평범한 사람들―그들이 만들어낸 폭풍 같은 시대의 이야기다.


목숨을 건 이야기엔 목숨을 걸고 싸울 적이 등장해야 한다. '1987'에는 고문수사를 지휘했으며, 고인의 죽음을 앞장서 은폐하려 한 대공수사처 박처장이 있다. 그는 1987년의 흐름을 막아선 나쁜 권력을, 넘어야 할 거대한 벽을 상징한다.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비틀린 신념으로 기꺼이 권력의 개가 된, '1987' 속 악의 구심점이자 만인의 적이다.


배우 김윤석(49)이 그 무거운 짐을 홀로 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김윤석'이란 감탄이 나온다. 그의 박처장은 공포스러울만큼 위압적인 존재감으로 극 전반을 내리누른다. 형형한 눈빛과 몇 마디 사투리로 달아오른 시대의 열망에 냉기를 끼얹어버린다.


'1987'이 공개된 다음날 만난 김윤석은 지난 1월 고 박종철 열사의 30주기에 가 유족을 만났던 일을 가만히 공개했다. 흔쾌히 영화화를 허락해준 유족들은 '그리고 제가 악역으로 나올 것 같다'는 김윤석을 두고 되려 '힘든 결정을 내려줘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다 한다. 영화를 위해 고인의 실제 안경까지 기꺼이 내줬다.


"최선을 다해서 악역을 하겠습니다."


'1987'은 김윤석이 내놓은 답이다.


영화 '1987'의 김윤석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고 다 울었다는데.


▶다들 울었다. 누가 가장 많이 울었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다들 울다가 보다가 울다가 다시 집중하고 하며 봤다. 주변이 그러니 장준환 감독도 참다참다 울음이 터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조사하고 공부하지 않았겠나. 미처 몰랐던 걸 알게 됐다. 우연과 필연이 얼마나 극적으로 엮인 사건이었는지, 누구 하나 행동하지 않았다면 더는 진실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영화보다 극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이전에도 내 영화를 보고 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난다. 제일 많이 운 것은 이번이다. 나이가 들어 눈물이 많아졌나, 통제를 못하고 나오는구나 생각할 정도로 울다 보다 울다 보다 했다.


-감독의 초고부터 받아보며 '1987'의 시작부터 함께했는데. 악의 축 박처장 역을 맡았다.


▶보나마나 그 역할을 줄 것 같았다. 일단 제일 많이 나온다. 또 가장 강력한 대항마, 대항하는 소시민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캐릭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한 몸 불살라서 하기로 했다. 사실 초고 단계에서는 '수정된 걸 봐야겠다'고 했다. 초고는 캐릭터가 스케치 정도 돼 있는 사건 위주였다. 이걸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했다. 굳이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소중하고 중요한 일을 영화로 만들 때는 다큐멘터리보다 더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를 만들 자신이 없다면 건드리면 안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다듬어가면서 인물이 세밀해지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스케치가 조각처럼 튀어나왔다.


-그래서 꼭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어제 완성본을 보고 기분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다 놓치지 않고 담아냈구나, 치우치지 않고 드라마틱 하게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맡은 역할이 필요한 만큼의 몫을 스스로는 한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분량에 상관없이 자기 몫을 했다. 인물이 많은데 카메오처럼 원맨쇼를 하고 빠지는 느낌이면 안되지 않나. 모두가 제 역할을 했다는 데 동료의식을 느꼈고 고맙기도 했다.


-엄숙한 마음으로 결정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나 했다고 해서 마치 그 시대 열렬히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시 희생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빚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엄숙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해도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지 않나. 재미있어야 와서 보고 의미와 뜻을 가져갈 수 있다. 그것 두 개를 놓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느 영화도 이 영화보다 스펙터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참여한 영화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1987'의 김윤석/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박처장은 어떤 악인인가.


▶나쁜 사람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나. 툭 던져서 나쁜 놈이 있다. '타짜'의 아귀나 '황해'의 면가라면 그저 나쁜 놈이라 할 수 있다. 이건 그렇게만 해결이 될 수 없는 캐릭터다. 박처장이 상징하는 많은 것을 안고 가야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볍다.


-'변호인' 등 이전 영화에서 등장한 비뚤어진 신념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악인 캐릭터들과 비교해 다르게 표현하려 한 대목이 있나.


▶다르게 그리려 한 적 없다. 보지 않았고 그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 하지 않았다. 저는 이 영화에서 그 시대 권력이 어떻게 통제되고 만들어지는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처장 하나로 담아야 할 것을 다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월남한 평안도 사람이고, 본인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자체가 우리 근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애초 권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캐릭터로 만든 것 같다.


-그 대목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는 거다. 회유하기 위한 말이었을 수도 있다. 감독님은 그러나 박처장은 그게 사실이라 믿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비극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거다. 그건 개인의 비극일 뿐, 남을 해하는 정당성은 1%도 부여받을 수 없는 것,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외형에도 큰 변화를 줬다. 더 거대해 보인다.


▶분장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모델이 된 실존인물 사진을 갖고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만들어보자 했다가 그 상징성을 외형적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마도 더 넓혀 M자를 만들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고, 마우스피스를 해서 하관 쪽을 두껍게 했다. 가슴도 더 두텁게 덧댔다. 마우스피스는 침이 자꾸 고이고 아무래도 발음에 제약이 와서 나름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을 구사하려고 혼자서 연습을 많이 했다…. 나중에 머리가 헝클어지니까 좀 사람 같더라. 김윤석 얼굴이 좀 보이네 하는 느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당시 발표를 김윤석을 통해 들으니 새삼 새로웠다.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했는데.


▶워낙 유명한 말이고 당대의 최대 유행어였다. 그걸로 연극이 만들어질 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모든 사람들이 '이게 말이 되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고 그랬다. '탁 치니 억' 그 말을 제 입으로 뱉을 줄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찍을 땐 정말 많이 웃었다.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을 은폐하려는 말이 너무나 유치하고 너무나 말이 안 됐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생각하며 연기했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모습, 추임새도 넣었고. 그 시대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1987'의 김윤석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고 박종철 열사가 고교 선배라고도 밝혔는데.


▶지난 1월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 열린 30주기 행사에 감독님과 제가 갔다. 박종철 열사 누님과 아버님을 만나뵈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했고, 누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제가 악역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이야기했다. '최선을 다해서 악역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박종철 열사의 형님은 '힘든 배역인데 결심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되는지 알아주시는 거다. 극중 박종철 열사 역을 맡은 여진구가 쓰고 있는 안경은 유가족이 주신 실제 열사의 안경이다. 이 영화를 최선을 다해서 만들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


-'1987' 출연을 결정한 건 촛불집회, 정권 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블랙리스트 이야기도 한창 나오던 때인데 외적인 부담은 없었나.


▶작년 여름에 출연을 결정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과연 누가 투자할 것이냐 하는 이야기 등이 어쩔 수 없이 나오기도 했다. 거기에 감독님과 모였던 몇 명의 배우가 있다. 솔직히는 실감도 안 났을 뿐더러 별로 겁 안났다. '1987'은 실화가 아닌가. 이걸 가지고 컴플레인을 한다면 그 사람들이 바보다. 우리는 그런 점에 대해 거리낄 게 없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 하자.' 순수하게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 지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도 드나 .


▶전혀. 그건 미안한 마음이 아닌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의 빚일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대통령 직선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을 모르는 세대에게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잠시 잊었던 자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준다면 그것으로도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걸 만들었기에 마음의 빚이 들어졌다고 생각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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