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표정한 얼굴의 여대생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어찌어찌 학비를 냈지만 세가 밀려 월셋방에서 쫓겨난 처지다.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선 그녀에게 끔찍한 일이 닥친다.
#돌아와 주면 안되냐는 아내의 전화에 농성 중이던 해고 노동자 성민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함께 산으로 가 텐트를 치고 시간을 보내던 성민 앞에 의문의 남자가 나타난다.
'숲속의 부부'라는 타이틀과 나체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포스터만으로는 영화의 정체를 오해하기 십상이다. 감독 전규환에 주목하는 것이 현명하다. '애니멀 타운'으로 시작한 '타운' 3부작, '무게' 등으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아온 그는 주변부 인물의 이야기를 적나라한 수위로 그려내 왔다. '숲속의 부부' 또한 여지없는 그의 영화다.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했지만 결국 막다른 결말에 내몰린 이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강렬하게 담는다.
거리에 서면 평범한 그 누구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은 알고 보면 지옥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했지만 결국 막다른 끝에 이르른 이들은 뜻밖의 불운 속에 무너져내리거나 스스로 괴물이 된다. 6년 전 촬영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야 정식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 '숲속의 부부'는 이젠 너무 흔히 쓰이는 한국사회를 이르는 말-'헬조선' 자체에 대한 잔혹한 은유로 보인다. 여대생 주희를 주인공으로 삼은 긴 프롤로그에 이어진 성민 부부의 본편에 이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욱 분명해진다. 뜻밖의 아름다운 판타지가 펼쳐지기도 하지만 그뿐, 현실과 뒤섞인 환상을 헤매는 무표정하고 조용한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숲속의 부부'는 마약 파문과 복귀를 거듭하다 2016년 6월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배우 고 김성민의 유작이기도 하다. 본인과 이름도 같은 본편의 주인공으로 분한 김성민은 막바지에 내몰려 끔찍하게 분열되어버린 캐릭터에 녹아들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숲속의 부부'는 본디 '종말'(The End)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져 이 제목으로 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였으나 고 김성민의 사망 이후 고통스러워하던 감독이 뉘앙스가 전혀 다른 제목을 영화에 얹어 관객과 만나게 됐다. 뒤늦게 만나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감독은 영화 속과 달리 즐겁게 현장을 누비는 그의 모습을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담아 고인을 추모했다.
2월 1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추신. 지난해 부천영화제 초청 당시 상당한 표현 수위로 자체 X등급으로 관객과 만났으나 심의를 통과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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