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머니백'(감독 허준형)은 제목처럼 돈가방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담은 범죄 오락물이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 청년, 깡패와 사채업자와 형사, 배달부와 비리 정치인... 돈가방에 얽혔을 법한 인물들이 다 쏟아져나와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클리셰 덩어리나 다름없는 돈가방 꼬리잡기가 뜻밖에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진하게 담긴 웃픈 풍자 덕이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9급 공무원시험 수험생 민재(김무열 분)는 집 보증금까지 빼 마련한 어머니 수술비를 양아치(김민교 분)에게 뺏긴다. 피 같은 돈은 사채업자 백사장(임원희 분)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만 그 역시 문의원(전광렬 분)에게 선거자금으로 뭉칫돈을 갖다바쳐야 하는 처지. 참다 못한 백사장이 도박장에서 저당잡은 최형사(박희순 분)의 총을 킬러박(이경영 분)에게 넘겨주며 문의원 처리를 의뢰하는데, 택배기사는 문제의 총을 옆집 민재에게 배달해버리고 만다.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공시생 민재가 깡패에게 뜯긴 5만원짜리가 돌고 돌아 선거운동원 알바비로 돌아오는 오프닝 시퀀스는 '머니백'의 요약본이나 다름없다. 영화의 주어는 김무열이 맡은 민재다. 아픈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양복 차림으로 편의점에 출근하면서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중. 잘못 쓴 사채빚 탓에 어머니 수술비마저 깡패에게 뺏기고 삶을 포기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되는 꼬인 인생이다. 그의 절박함에 몇몇 우연이 더해지면서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나름의 애환은 그를 때린 깡패에게도, 그에게 잘못 총을 전한 택배기사에게도, 심지어 그와 엇갈린 킬러에게도 있다. 깡패는 돈을 더 받아오라는 사채업자로부터 더한 폭력을 당하고, 택배기사는 갑질 고객이 쏟아부은 간장게장을 뒤집어쓰고도 오늘의 배달물량을 채워야 하며, 일이 끊겨 일용직 노동자가 된 나이 든 킬러는 전 같지 않은 컨디션을 내내 실감한다. 극단의 설정과 캐릭터 속엔 하루하루가 힘겨운 평범한 사람들의 체념이 짙게 배어있다.
허나 처절할지언정 무겁지 않다. 극단적 폭력과 극단적 선택, 연속된 우연은 몇몇 허점에도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그 단짠단짠의 리듬에 슬슬 적응이 될 때쯤 웃음도 피식피식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이야기도 웃음도 뒤로 갈수록 힘이 붙는다. 한 데 모인 한국영화 대표 신스틸러들은 전형적인 캐릭터로도 단단한 공력을 과시하는데, 신예 허준형 감독은 누구 하나 허투루 소비하지 않고 7명의 캐릭터를 제대로 운용하는 묘를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카리스마를 내려놓은 이경영의 어설픈 킬러가 제대로다. 웃음기 쏙 뺀 택배기사 오정세도 돋보인다. 쥐어 터진 얼굴로 영화를 끌어가는 답답이 청년백수 김무열도 전에 없던 매력을 과시한다.
자살 시도나 걸핏하면 음식으로 모욕감을 주는 폭력 묘사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망한 공시생들의 잇단 자살, 택배기사에게 간장게장을 쏟아붓는 진상 갑질이 이 땅에서 실제 벌어지는 현실임을 떠올리면 불편하기보단 답답해진다.
4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