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환 감독이 새 영화 '사자'로 돌아왔다. 2017년 박서준과 찍은 '청년경찰'을 내놓은 뒤 꼭 2년 만이다. 여느 영화 감독들에 비해 빠르다. 그는 '사자'를 내놓은 뒤 곧장 '멍뭉이'를 찍고 다시 '사자' 후속편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만큼 그의 머릿속에는 풀어놓고 싶은 영화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다.
'사자'는 앞으로 시작될 '사자 시네마틱 유니버스' 서막을 알린 영화다. 아버지를 잃고 신에 절망한 채 이종격투기 챔피언으로 자란 용후(박서준)가 오른손에 성흔이 생긴 뒤 구마사제인 안신부(안성기)와 악의 사제 지신(우도환)과 맞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사자'의 성패에 따라 '사제' '사신' '법사'까지 세계관을 공유하는 한국판 오컬트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탄생할 예정이다. 김주환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지난달 31일 마침내 '사자'가 개봉했다. 소감은 어떤가.
▶큰 경험이었다. 모든 게 기회였다. 이 모든 게 어떤 결과와 영향으로 종합될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머릿속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사자'는 시나리오보다 좀 더 밝게 갈 줄 알았는데 더 어둡게 갔는데. 감정도 그렇고, 전체 색도 그렇고.
▶일부러 냉기를 넣은 건 아니다. 한국에서 판타지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 장르가 정착돼 거기에서 변주를 줄 수 있는 할리우드와는 다르다. 그래서 일부러 미세먼지라든지, 한국이되 좀 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싶었다. 현실에서 곧바로 판타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현실 같은 판타지를 담고 싶었다.
-악에 씌운 부마자들을 퇴마하는 나열식 구조인데.
▶하이라이트 전에 등장하는 부마자 1,2,3마다 각각의 특성을 주려 했다. 그래서 이들과 용후가 맞서면서 점점 더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 처음 용후가 부마자와 맞설 때는 자신의 힘을 몰랐다. 자신한테 이런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 두 번째 부마자와 싸울 때는 자신의 힘을 안 쓰려 했다. 그러다가 분노로 힘을 쓰려고 했다. 세 번째는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렇게 이 영웅 캐릭터가 내면이 완성돼 가는 걸 그리려 했다.
-용후가 각성하는 계기가 어린 소년의 죽음 때문인데.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선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가 암묵적인 규칙일 정도로 금기시하는 데.
▶아이와 개는 죽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그래도 절대악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느 정도 수위가 절대악으로 보여질 지를 생각했다.
'사자'에서 악은 남녀노소,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엄청난 부잣집의 딸에게도, 고아원에서 왕따 당하는 소년에게도, 격투기 챔피언에게도 다가간다. 가장 연약하면서도 가장 강한 악을 보여주려 고민하다가 선택하게 됐다.
-하얀 불 CG가 다소 이질적인데.
▶CG작업을 해준 덱스터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사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섞어 쓰면서 이질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작업을 했다. 실제 손에 장갑을 끼고 불을 붙인 뒤 그 불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도 했다. 하얀 불을 형상화하기 위해 슈퍼바이저가 정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거대한 손들의 CG는 만화 '베르세르크' 영향을 받았나.
▶'베르세르크'는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그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기이한 상징성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었다. 덱스터 스튜디오 직원들의 손을 일일이 스캔을 떠서 만든 것이다. 하나로 프로그램을 돌렸다면 손 모양이 다 똑같았을 것이다.
-'사자'는 거대한 세계관의 출발이자 인물들의 소개란 점에선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다만 '청년경찰' 감독과 박서준의 만남이기에 '콘스탄틴' 같은 영화를 기대했을 관객들에겐 톤앤매너가 어두워서 기대에 반하는 지점이 있을 듯 한데.
▶'사자'에 담겨 있는 오컬트란 서브 장르와 히어로 무비란 메인 장르를 어떻게 결합시켜 균형을 잡을지를 고민했다. 오컬트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관객들과 히어로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들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지점을 생각했다.
-박서준은 그간 밝고 청량한 이미지와 달리 고뇌하는 청년이란 새로운 모습을 보였는데.
▶박서준의 새로운 모습을 담으려 했던 건 아니다. 이 영화에 맞는 모습을 담으려 했던 것뿐이다. 박서준은 '사자'에서 분노와 여러 감정을 조절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가 표현한 몇 가지 표정은 분명 새로운 얼굴들이다. 어디서부터 마음이 열릴지,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잘 그려냈다.
-지신을 연기한 우도환은 중성적인 매력을 드러냈는데. 다만 악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뱀 같은 지혜를 활용하는 악이라는 점이 다른데.
▶지신은 뱀의 지혜를 담았다고 생각했다. 지신 자체가 악마는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악의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선은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이라면 악은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지신은 남을 희생시키다가 자신까지 악에 소모되는 캐릭터다. 그가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른다. 젊은 외모를 갖고 있지만 속은 능구렁이 같은 캐릭터라고 설정했다.
-영화를 기획할 때는 클럽이 악의 소굴이란 게 전형적이지만 상식적인 설정이었던 반면 이 영화가 개봉한 지금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지점이 됐는데.
▶어디서 악이 생길까 고민했다. 광기가 있는 곳. 한편으로 깨끗하고 깔끔한 클럽과 지하가 대비되길 바랐다. 겉과 속이 다른 지신을 상징하는 공간이길 바랐다.
-용후가 부마자들과 싸우는 하이라이트에서 유독 여성 부마자와는 때리는 액션을 하지 않던데. 전작 '청년경찰'에서 일었던 논란에 대한 교훈이었나.
▶꼭 그렇다기보다는 글쎄 여자를 남자가 정면으로 때리는 장면을 넣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성흔(스티그마)라는 설정은 어떻게 가져왔나. 또 한 손에만 스티그마를 넣은 이유가 있다면.
▶스티그마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존재했고 들어왔다. 왜관성당에서 까마귀들이 몰리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곳의 수호성인이 성 비오였다. 성 비오는 손과 발에 스티그마가 있었다는 성인이다. 인연을 느꼈다.
한쪽 손에만 스티그마가 있다고 설정한 건, 일종의 초능력자에게 주는 제약이자 부작용 같은 것이다. 스티그마에서 나오는 불주먹을 쓰는 건 곧 계속 자신의 피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를 태운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종의 약점을 주려고 했다.
-안신부가 구마할 때 쓰는 언어는 라틴어고, 바티칸에 전화할 때 쓰는 언어는 이태리어다. 그렇다면 지신이 뱀에게 기도할 때 쓰는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완전히 새롭게 만든 악의 언어다. 언어적인 체계를 생각해서 만든 말들이다. 우도환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극 중 안성기의 전사가 소개되진 않는다. 그의 스승은 영화 속 악마의 말처럼 정말 지옥에 있나.
▶그렇지 않다. 안 신부는 그런 악마의 말에도 유혹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지닌 인물로 설정했다. 그의 몸에 있는 수많은 상처는 그가 짊어지고 살아온 흔적들이다. 피폐해진 육체로 끝까지 악과 싸우는 인물.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죽는 날까지 악과 싸우려 노력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안성기의 등도 그렇고, 용후 아버지의 등도 그렇고. 그 등을 많이 담았는데.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을 표현하려 했나.
▶정서는 여러 감정의 군집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보는 아버지의 등과 어른이 돼 보는 아버지의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랐으니깐.
-용후가 꿈에서 어딘가 건물에서 내려가다가 아버지를 보고 다시 올라가는데. 내려가면 그곳에 악이 있는 것인가.
▶그건 관객이 생각할 몫인 것 같다. 강릉에 있는 성당에 있는 건물에서 그 장면을 찍었다. 실제로 타원형이라 밑으로 내려갈 수도,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크레인에 조명을 달아 건물 주위를 돌리면서 빛을 비췄다.
-마지막 용후가 아버지와 만나는 곳은 지옥인가.
▶지옥에 근접한 곳이다. 연옥일 수도 있고. 지옥을 그리려면 본의 아니게 모방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소만 가져왔다. 지옥은 떨어지는 곳이니 높이가 있고 불기둥이 있다하니 그런 모습을 담았다.
-'신과 함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와 만나는 장면처럼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에서 더 울릴 수도 있었을텐데.
▶이 영화에선 그 감정이 맞다고 생각했다.
-우도환이 악의 힘을 받아들인 뒤 외피는 어떻게 설정했나. 뱀의 형상을 가져온 것인가.
▶뱀이라면 팔다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새하얀 뱀이 들어오면 자신의 내면과 닮은 외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클럽 바빌론의 상징은 어떻게 구상했나.
▶역십자가와 천국에 반기를 든 검, 그리고 뱀과 들소 문양을 합쳤다.
-음악은 영웅 영화의 전형 같은데.
▶처음에는 현악기의 역주행 같은 느낌으로 오싹한 느낌을 주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EDM 베이스의 묵직하지만 신나는 느낌을 주려 했다. 음악도 캐릭터와 같이 진화하는 느낌이길 바랐다.
-'사자' 이후 '사제'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사자' 흥행 여부에 많은 부분이 작용하겠지만 긴 서사의 출발이란 점에서 계속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차츰 더 성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데. '퍼스트 어벤져'가 흥행은 별로였지만 그 덕에 더 많은 마블영화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관객의 선택은 일종의 투표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며 더 고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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