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강말금입니다.
처음 이름을 듣고 '강맑음'이려니 생각했는데, 강말금이다. 발음은 똑같으니 귀로 들을 때는 어린아이 이름처럼 '맑음'인데, 또 눈으로 읽을 때는 세월의 깊이를 담은 듯한 '말금'이다. 배우 강말금(본명 강수혜, 41)은 국문과 재학 당시 과에서 시를 제일 잘 쓰던 친구가 필명으로 쓰던 이름 '말금'을 받아서 쓰게 됐다며 웃었다. 얼굴에 맑은 웃음이 떴다.
부산에서 국문과를 나와 무역회사에 다니던 강말금은 서른이 되던 해,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극단 오디션을 본 뒤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단편 영화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 진출을 꿈꾸던 강말금은 힘들었던 생활 끝에, 10년 만에 드디어 스크린 주연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에서 타이틀롤 찬실 역을 맡은 강말금을 만났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인생 최대의 위기 상황을 씩씩하게 극복하는 '복 많은' 찬실이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등 3관왕에 올랐고,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로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뤘지만, 독립영화인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개봉을 미루지 않고 예정대로 3월 5일 관객을 만나게 됐다. 강말금을 만나 찬실이에 대한 이야기와, 배우 강말금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영화 첫 주연작 개봉 소감이 어떤가.
▶ 닥치니까 얼떨떨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다가 이런 일이 다 있나 싶다. 너무 기쁘다.
-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호평받고 3관왕까지 차지했다.
▶ 저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다들 열심히 했지만 이렇게 호평받을 줄 몰랐다. 처음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GV도 하고, 영화 티켓이 매진되고, 상까지 받아서 정말 좋았다. 제가 참 복이 많다.
- 찬실이를 연기하며 느낀 찬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함인 것 같다. 찬실이는 화가 나는 것도 못 숨기고 좋아하는 것도 못 숨긴다. 감정을 숨겨야 하는 순간에는 어색해지고, 결국에는 진심을 드러내는 모습이 웃음을 주는 포인트 같다. 제가 찬실이를 연기하며 가장 매력을 느꼈던 것은 찬실이가 남 탓을 안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사람이 힘들 때는 남 탓하고 세상 탓을 하는데 찬실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연기하며 기뻤다.
- 찬실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다. 각 배우들과 연기 호흡이 어땠나.
▶가장 스스럼없이 만난 사람은 김영민 선배님이다. 선배님만의 열린 느낌이 있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장국영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 나에게도 장국영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승아 씨는 제가 좋아하는 착하게 생긴 예쁜 배우다. 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저희가 총 18회 차를 촬영했는데, 소피(윤승아 분)네 집 촬영을 초반 사흘 동안 했다. 극 중에 소피랑 엄청 친한 역할인데, 초반에 찍다보니 다들 긴장한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다. 윤여정 선생님은 감동 그 자체다. 촬영 전 선생님 댁에 가서 리딩할 때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첫 촬영 때 긴장을 했는데, 현장에서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그 역할 그대로만 연기하고 저를 대해주셨다. 배유람 배우와는 썸 타는 장면을 재미있게 촬영했다. 대상화된 남성의 캐릭터라 연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즐겁게 작업했다.
- 장편 영화 첫 주연이다. 현장에서 책임감이 컸을텐데.
▶ 제가 주연이기 때문에 끌어간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컨디션이 변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고. 건강도 그렇고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지키려고 했다. 찍을 씬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어떤 씬을 굉장히 잘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안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조연을 맡아 연기하다보면, 어색하게 그곳에 존재하다가 연기를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찬실이가 복도 많지'는 주인공으로서 그 장소에서 살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 웃는 모습이 찬실이와 많이 닮았다. 영화 속 찬실이와 본인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나.
▶ 일단 나이가 똑같았다. 40대.(웃음) 저는 찬실이처럼 의리 있고 투신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둘 다 고생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혼기를 놓쳤다. 그런 게 비슷한 느낌이다. 친구들은 영화를 보고 저와 찬실이가 비슷하다고 하더라. 특히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모습이 똑같다고 했다. 하하.
- 강말금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 할머니 이름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다고 하기도 한다. 제가 국문과를 나왔다. 시 잘 쓰는 친구의 닉네임이었다. 제 이름이 수혜인데, 연기하며 꽉 찬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이름을 빌려달라고 했다. 말금은 시적 허용이 있는 이름이다. 이름 세 글자에 모두 받침이 있어서 좋다. 처음에는 저도 이름을 말 할때 쭈뼛거렸는데, 불러주니까 좋다.
- 서른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 제가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했고, 대학교에 가서도 전공은 국문과였지만 연극 동아리를 했다. 그때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이후로 집안이 어려웠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3년 정도 앓다가 돌아가셨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부산에 있는 극단의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정작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며 술을 많이 마셨다. 계속 울면서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가 일종의 우울증이 와서 당시 직장 상사에게 상담을 했다. 그 분이 서울에 자리가 있다고 거기로 가면 어떻겠냐고 해서 서울로 왔다. 그렇게 한 2년 정도 더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갈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서른이었다. 서울에 와서는 엄마와 언니가 떨어져서 혼자 살다 보니까 저지를 용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저질렀다. 제가 느릿느릿하고, 정적이다. 재능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타입이 아니고 외모도 딱히 늘씬하지 않다. 나 같은 사람이 배우 한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할까 싶어서 말을 안 하고 시작했다.
- 그렇게 늦게 시작한 배우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저는 한 5년을 연극으로 돈을 못 벌었다. 2012년부터 연극을 본격적으로 많이 했는데 2014년에 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하셨다. 어머니가 지금도 잘 못 걸으시는데 그 힘든 일을 언니가 혼자 감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나 자신만 생각해서 연기를 해도 되는 걸까. 나는 빚쟁이다, 빚을 지고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 힘들었던 시간 가장 힘을 준 것은 무엇인가.
▶ 제가 연극 할 때 제 친한 친구가 매달 10만원씩 용돈 줬다. 저희가 국문과에서 현대 문학을 공부할 때 파트롱(미술에서는 예술의 보호자, 후원자)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네가 예술을 하면 내가 파트롱이 되겠다'라고 했다. 그 친구는 몇 년 동안 저의 파트롱이자 예술적 후원자가 됐다. 그 친구가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남포동에서 봤다. 꿈같았다. 믿기지 않았다.
- 늦게 시작한 연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게 돼 뿌듯할 것 같다.
▶ 저는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한다. 언제 망할지 모르니까. 항상 어떻게든 인생의 틈새를 벌려서 재밌게 살려고 한다.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도, 수년간 다른 배우들 앞에서 내가 배우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방어막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얄짤' 없이 만으로도 40대다. 좀 더 그릇이 큰 배우가 돼서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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