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화이기에 불편하고, 현재진행형이기에 더 무겁다. 보고 나면 개운치 않은 찝찝한 끝맛을 남기는 영화 '공기살인'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공기살인'은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의 실체와 더불어 17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증발된 살인자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투를 그린다.
대학병원 교수인 정태훈(김상경 분)과 아내 한길주(서영희 분)는 6살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이 가정은 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폐가 굳어버리는 폐 질환 진단을 받는다.
심지어 아들의 옷을 챙겨오겠다며 집으로 갔던 한길주 또한 불과 몇 달 전 건강검진 당시 깨끗했던 폐가 완전히 굳어 버린 채 먼저 사망한다. 검사인 한영주(이선빈 분)는 언니 한길주의 사망과 조카의 병에 의문을 품고, 정태훈과 함께 원인을 찾아 나서는데 같은 증상을 보이고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들은 또 있었다.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 공기를 타고 죽음을 몰고 온 것은 뜻밖에도 '가습기 살균제'였다.
'공기살인'에서 다뤄지는 가습기살균제라는 형태의 제품은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1994년 첫 출시되어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약 천만 통이 판매되면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폐 섬유화 증상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사결과 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임이 밝혀졌다. 피해자만 백만 여명, 생활용품 중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으로 기록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다.
영화는 4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아무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죽음에 노출된 피해자들을 조명하고, 입장을 대변한다. 점점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와닿을 때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난다.
어쩔 수 없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연들이 등장하지만, 마냥 어둡지는 않다. 초반에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반전이 등장하며 극적 재미를 이끈다. 영화 말미 각 정부 부처가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장면은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마다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와 재미를 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큼은 보이는 작품이다.
이는 김상경을 중심으로 이선빈, 윤경호 등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선빈은 초반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부터 긴장감을 조이는 역할까지 성공적으로 해내며 영화에 진정성을 더한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인 만큼 영화는 철저히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찝찝한 뒷맛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이 이야기를 잊지 말고, 또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울려퍼지는 것만으로도 '공기살인'은 존재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조용선 감독은 "실제와 다른 영화의 결말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계속 지켜볼 것이라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4월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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