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헌트' 게임의 법칙을 아는 사람이 만든 파도 같은 서스펜스

발행:
전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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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사냥할 것인가, 왜 사냥할 것인가.


1980년대 초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묻는 미주 한인들의 시위가 거세다. 안기부 해외팀도 국내팀도 신경이 날카롭다. 그런 가운데 미국 CIA가 한국 대통령 암살 음모를 파악한다. 피가 흐르지만 누구의 사주인지, 배후는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날로 거세진다. 그 못지 않게 안기부의 공작도 극심해진다. 멀쩡한 대학생을 간첩으로 둔갑시키고, 평범한 대학교수를 북한 간첩 총책 동림으로 조작하려 한다. 문제는 안기부 내에 진짜 북한 간첩 동림이 숨어있었던 것. 일본에서 북한 고위 인사가 망명하려 하면서 이 같은 정보를 흘린다. 실제로 최고 기밀이 북으로 계속 흘러간 정황이 드러난다.


과거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국정원 해외팀을 이끌고 있는 박평호와 공수부대 출신으로 안기부 국내팀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도는 서로를 의심한다. 이제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가 동림이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파헤칠수록 예기치 못한 실체에 다가가게 된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이 다가온다. 그리고 다시 대통령 암살 작전이 수면 아래서 떠오른다.


'헌트'는 배우 이정재가 주연을 맡고 직접 연출한 작품이다. 이정재가 박평호를, 정우성이 김정도를 맡아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만에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좋다. '헌트'는 무엇을 사냥하고 왜 사냥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익숙하돼 다른 시공간인 1980년대의 서울. 이곳에서도 광주를 피로 진압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군림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고 불리던 장영자 사건과 똑 닮은 사건도 일어나고, "실제 상황"이라며 공습경보가 울렸던 이운평의 미그기 남하 사건과 똑 닮은 사건도 일어난다. 암혹했던 그 시대처럼, 민주화를 외쳤던 대학생들이 끌려가 고문 당하며 간첩으로 둔갑된다.


바로 그 시공간에서 '헌트'는 사냥을 한다. 시작은 다른 이들의 사냥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사냥한다. 몰이사냥이다. 덫을 놓고 약점을 찾는다. 그러다 사냥감이 같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왜 사냥을 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이 과정이 매우 좋다. 이정재 감독은 이야기가 자칫 느순해질 즈음마다 액션을 넣어 긴장감을 끌어간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이를 드러낼 때의 긴장감도 좋다. 이 긴장감들은 파도 같다. 앞의 긴장감이 사그러질 즈음에 뒤의 긴장감이 밀려온다. 그러다 큰 파도처럼 거센 긴장감이 확 덮쳐오고 파도가 깨지고 잠시 찾아오는 정적을 거쳐 다음 긴장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간첩 찾기로 긴장감을 올리고, 그 긴장감은 대통령 암살 작전이란 다른 긴장감으로 바뀐다. 그렇게 뒷 파도가 앞 파도를 계속 밀어내며 새로운 긴장감을 쌓는다. 이 연속성이 좋다. 게임의 법칙을 아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텐션이다.


'헌트'를 연출하고 박평호를 연기한 이정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김정도를 연기한 정우성과의 텐션은 보는 이를 스크린으로 잡아끈다. 각각 이정재와 정우성을 보좌하는 역할로 출연한 전혜진과 허성태도 좋다. 박평호가 챙기는 대학생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고윤정은 인상적이다.


'헌트'의 액션은 좋다. 액션의 총량이 많지 않은데도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액션 직전까지 끌고가는 긴장감이 좋기 때문이다. 음악은 '헌트'의 긴장감을 이어가고 고조시키는 데 주효했다. 미술은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줘도 될 것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촬영을 가지 못했는데도 미국과 일본, 태국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미술 덕이 크다. 1980년대를 잘 구현하면서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만든 것도 미술 공이다.


짐승을 쫓는 자는 태산이 보이지 않고, 탐욕을 쫓는 자는 시비에 어두워진다고 했다. 무엇을 쫓다보면 열심히 쫓다보면, 어느순간 쫓는 이유를 잃고 쫓는 것만 남는 게 사람인 법이다. '헌터'는 이 쫓음이, 이 쫓음으로 놓치는 게 무엇인지를 양쪽의 입장으로 나뉘어 균형을 잡는다. 탐욕을 쫓아 시비에 어두워진 이는 나름의 방식대로 퇴장시킨다. 이정재 감독은 이 균형을 잘 잡았다. 이 균형으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설정의 리스크에서 잘 빠져나왔다. 이 균형이 좋다.


감독 이정재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8월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카메오 활용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아 좋다. 특급 카메오 중 황정민이 특히 인상적이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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