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는 참지만 불이익은 못 참는다. 영화 '자백'은 이 테마를 밀도 있게 붙잡는다. 불의의 자백을 듣기 위해.
잘나가는 사이버 보안 사업가 유민호. 아내는 재벌가 막내딸이다. 그런 삶이지만 유민호는 미모의 여인과 불륜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유민호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호텔을 찾았다가 의문의 습격을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있던 불륜녀 김세희가 죽어있다.
유민호는 밀실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다. 누군가 자신을 쓰려뜨리고 김세희를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구속이 기각돼 눈 내리는 깊은 산속 별장에서 쉬고 있는 그에게,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가 찾는다. 양신애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선 자신에게는 사건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건의 숨겨진 퍼즐을 짜맞춘다.
'자백'은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 리메이크다. 원작보다 더 촘촘하고 더 극적이다. 윤종석 감독은 연극 같은 구성을 영화처럼 확장했다. 그 확장된 세계가, 이 이야기에 적확했다.
'자백'은 네 번의 반전이 있다. 각각의 반전은 각각의 인물들이 담당한다. 김세희 역의 나나, 유민호 역의 소지섭, 양신애 역의 김윤진이 그리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영화의 기승전이다. 그리고 결에서 이들이 쌓은 이야기가 뒤집힌다. 이 같은 서사 전개는 관객과 함께 미스터리를 쫓는 쾌감을 주는 동시에 관객의 지적 만족감을 끌어올린다.
'자백'은 지적인 스릴러다. 쌓아올린 이야기들을, 거꾸로 무너뜨린다. 쌓아올렸던 사람이 스스로 무너뜨리게 만든다. 이 과정이 깔끔하다. 이 과정을 따라가거나 앞서 가면서 얻는 지적 쾌감이 상당하다. 이 지적 쾌감을 운반하는 데는 음악감독 모그의 공도 상당했다.
유민호 역의 소지섭은 좋다. 그간 소지섭에서 못 봤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얼굴을 발견하기까지 지켜보는 맛이 쏠쏠하다. 짙어진 검은 눈에 베일 듯하다. 양신애 역의 김윤진은 영화의 중심이다. 관객을 바른 길로, 때로는 다른 길로, 그래도 목적지로 무사히 안내한다. '세븐데이즈'에서 변호사를 연기했던 김윤진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자백'의 김윤진을 보는 즐거움이 남다를 듯하다. 필모그라피에서 시간을 온전히 잘 보낸 배우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김세희 역의 나나는 '자백'의 발견이다. 두 가지 얼굴을, 한 얼굴로 두 명처럼 연기했다. 배우 나나가, 이 배우의 미래가 '자백'을 보면 궁금해질 테다.
'자백'은 눈 내리는 어느 날의 이야기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얗게 덮여진. 그 안에서 실재를 찾는다. 지적인 쾌감을 주는 미스터리스릴러가 반갑다.
10월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스포일러를 가급적 피하고 보길 권한다. 감독의 전작 '마린보이'를 본 관객이면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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