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상호 감독이 날 선 초창기 작품들이 연상되는 '얼굴'로 관객들과 만난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배우 박정민을 필두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들이 연상호 감독과 손잡았다.
22일 서울시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의 제작보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이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특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라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 그가 날 선 초창기 작품들이 연상되는 미스터리 영화 '얼굴'을 선보인다. 2018년 자신이 쓰고 그렸던 첫 그래픽 노블 '얼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야말로 태초의 '연니버스'의 귀환이라고 칭할 만한 그만의 문제의식과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얼굴'은 모두가 열심히 살기에만 몰두했던 고도성장의 시기인 1970년대, 시각장애인으로 남들에게 천대받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했던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을 중심으로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돌아온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그 얼굴을 파헤치는 스토리로 흥미를 더한다.
연상호 감독은 "마지막에 던져지는 감정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는데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명하기 힘들었다"며 "OTT, 극장, 유튜브까지 매체가 많은데 영화를 만드는 방식의 다각화 시키고자 해서 여러 이유로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이 직접 쓰고 그린 원작 만화를 프리비주얼 삼아 프리 프로덕션을 2주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이 시작된 이후로는 놀라운 기동력으로 약 3주간 13회차에 걸친 촬영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는 "배우와 감독이 다이렉트로 소통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좋았다. 기동성 있는 프로덕션이라서 가능했다. 너무 큰 영화들은 잠깐의 대화만으로 바뀌는 게 너무 많은데 우리 영화는 직관적인 회의를 통해 반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리얼한 신과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 영화에 적합한 제작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연상호 감독은 "작품 할 때마다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새로운 영혼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게 제 마음속의 동력이다. 새로운 영혼을 가진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할 것 같더라"라고 했다.
이어 "내가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물론 두려움은 있었다. 제가 규모가 있는 영화를 많이 하다 보니까 결과물이 못 미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은 있었다. 그 고민 자체가 다각화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그걸 떨쳐내려고 했고, 그 고민은 스태프, 배우들 다 모이면서 없어졌다. 훨씬 더 좋은 방식으로 영화가 완성될 거 같더라. 예산은 늘 한정적이다. 영화를 하면서 풍요롭게 찍어본 적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역설적으로 '얼굴'이 가장 풍요롭고 여유로웠다"고 전했다.
박정민은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도장을 파며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인 '임영규'의 젊은 시절과 그의 아들인 '임동환'까지 모두 소화하는 1인 2역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에게 1인 2역을 먼저 제안했다는 박정민은 "아들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파헤쳐 나가면서 그 인물을 아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하면 보시는 관객분들이 이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배우 개인적으로도 도전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서 살짝 던져봤는데 넙죽 받으셨다. 출연료를 아끼려고 그러신 것 같다"고 농담하며 "기회 주셔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에 연상호 감독은 "제 고민을 해결해 주셨다"고 덧붙였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염력',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이어 박정민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박정민이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가 됐다. 한국의 연기파 배우라면 박정민 세 글자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이어 "예전에는 연기하며 짜증을 낸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짜증이 깊이 있어졌다. 짜증의 결이 생겼다. 굉장히 깊이 있는 짜증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심지어 영화 초반에는 짜증을 참는 연기가 있는데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권해효가 현재의 '임영규' 역에 캐스팅되며 배우진에 힘을 실어줬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 역할을 맡았던 그는 "렌즈도 껴야 했는데 촬영할 때 묘한 편안함이 있었다. 주변 환경과 주변 배우들을 다 살펴야 하는데 눈이 좀 안 보이는 상태가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더라.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편안하게 촬영했고, 작고하신 장인어른께서 시각 장애인이셨기 때문에 그걸 바라봤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권해효와 한 역할을 연기한 데 대해 "제가 먼저 촬영했고, 감사하게도 제 연기를 따서 가져가 주셨다. 사실 얼굴이 크게 닮지 않았는데, 연기를 따와서 화면에 녹여주시니까 보다 보면 제 얼굴인데 '권해효 선배님 같다' 싶은 장면이 있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이어서 같이 연기하고 있으면 넋 놓고 보게 됐던 것 같다"고 했다.
영화 내내 얼굴이 등장하지 않아 가장 캐스팅이 힘들 것이라 예상됐던 의류 공장의 직원 '정영희' 역에 '계시록'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 신현빈이 출연을 결정했다. 신현빈은 "표정이나 얼굴 활용 그 부분을 줄이게 된다면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이 얼굴이 안 나오는 배역을 배우에게 제안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고민을 말씀하시더라. 전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런 상황을 흥미로워하는 배우들도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저한테 제안 주셨다"며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감정을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인 것 같고,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려우면서도 재밌을 것 같더라. 배우들은 어떻게 하면 얼굴이 잘 드러날 수 있는지 고민하는데 그걸 피해야 하고 가려야 하다 보니까 어려웠다. 몸짓이나 목소리를 많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면도 있었다"고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정영희'라는 인물이 불편한 정의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불편한 정의를 규정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정영희'의 얼굴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신현빈 배우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손, 어깨의 움직임을 많이 표현해 주셨다. 영화를 편집하며 놀란 건 얼굴이 안 보이는데 '정영희'의 감정이 오히려 더 전달이 잘 되는 것 같더라"라고 극찬했다.
임성재가 청계천 의류 공장의 사장 '백주상' 역으로, 한지현이 전각 장인 '임영규'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PD '김수진' 역에 캐스팅됐다.
한지현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이기도 한 박정민과 '얼굴'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첫 촬영에 임했다는 한지현은 "제 첫 촬영 장면을 박정민 선배와 찍었다. 저한테 짜증 내신 건 아닌데 첫인상은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함께 밥 먹으면서 '선배님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하니까 많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이렇듯 특히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은 각기 다른 작품에서 만나 다져진 오랜 친분으로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발휘, 빠듯한 촬영 현장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고. 연상호 감독은 "저와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이 많다 보니까 매일 현장에 가는 게 동창회 같은 느낌이 있었다. 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누구나 의견을 내는 분위기였다. 매일 신을 만드는데 대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상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데 대해 "한국의 대표 연기파 배우 이병헌과 박정민의 맞대결이라고 생각한다. 9월에 맞붙어보자"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에 박정민은 "저 이병헌 선배 어려워한다. 제가 함부로 얘기할 순 없고, 박찬욱 감독님도 너무 존경하기 때문에 저희는 저희 할 일을 열심히 할 거고, '어쩔수가없다' 개봉하면 저도 극장 가서 볼 거다. '얼굴'도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임성재는 "'얼굴'이 연상호 감독님에게 등 돌린 팬들이 다시 돌아올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얼굴'은 오는 9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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