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에서 비주류 음악으로 평가받던 인디 음악이 소리없이 자리매김했던 올해 가요계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홍대 인디신도 유난히 재능있는 아티스트들로 북적거렸고, 범상치 않은 인디 음악들은 하나 둘씩 입소문을 타더니 방송, 음악 페스티벌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 속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인식되던 '인디음악',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가사의 공감대와 개성넘치는 음악들은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개성이 표출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마련하며 가요계의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받았다.
지난해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으로 대중음악계에 불었던 인디열풍은 올해에도 그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인디음악들은 금세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인디의 10년만의 부활' '인디 혁명'이란 키워드가 앞다투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가요계의 대안이라는 평까지 얻으며 시선을 독차지했던 이들이다.
물론 올해는 '인디열풍'이란 표현이 다소 무색할 정도로 거품이 꺼지고 관심도 크게 줄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가능성을 낳았던 올해 인디 음악계다.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평가받던 인디계의 가장 큰 성과는 해외 교류와 페스티벌을 통한 저변 확대, 그리고 대중화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재조명한 노랫말과 개성 넘치는 음악들로 국내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제시한 국내 인디음악은 해외로 무대를 옮겼고, 공연장은 마니아들 뿐 아니라 많은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 낯선 음악이 주는 새로움..대중화의 두 얼굴
지난해 코믹 퍼포먼스 UCC가 화제가 되면서 일약 스타가 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지난 1년간 주류 음악계와 인디신을 묘하게 줄타기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고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밖에 브로콜리 너마저, 보드카레인 등의 맹활약 속에 요조 타루 등 뮤지션은 CF음악을 통해, 문샤이너스는 영화에 출연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포털 사이트와 EBS '스페이스 공감' 등 차별화된 미디어의 관심 또한 새 영역을 개척하게끔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상파 방송이 인디 음악에 마음을 연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다. KBS '음악창고' MBC '라라라'는 인디신의 활성화에 적극 동참한 방송 중 하나. 하지만 최근 폐지가 결정돼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결국 올해 인디신의 수확 중 하나는 '인디음악의 대중화'다. 이들의 음악이 가진 '낯설음'은 새롭고 독특한 소리로 대중 속으로 침투했고, 인디 뮤지션들에 대한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 요조 타루의 발랄함 속에 데이브레이크의 경쾌함이, 보드카레인과 디어클라우드의 감성음악도 로맨틱한 효과를 보여줬다.
기존에 마니아들이 CD를 구매하던 행태도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져 음원 벨소리 등 다양한 수입원으로 확대된 것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 대중이 인디음악을 '듣기 힘든' 음악이 아닌 '새롭고 익숙한' 음악으로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언론의 '반짝 관심'에 인디음악 열풍의 불꽃도 점점 꺼져만 갔고, 결국 '이슈 쫓기에 급급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장기하와 같은 새로운 컨텐츠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이들만을 위한 홍보의 다양한 창구도 부족해 인디음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던 한 해였다. 꾸준한 관심이 필요할 때다.
대중문화평론가 성시권씨는 "여러 인디 콘텐츠들이 영화 음악 분야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고 주류 시장을 위협하기도 했다. 음악의 다양성에 일조한 인디음악이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대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인디문화의 특성이 획일화된 대중음악에 신선함을 안기게 된 한해였다"며 평가했다.
◆ 페스티벌 문화의 정착..인디음악에 큰 관심
대중 속 깊히 파고든 인디 음악의 뜨거운 관심은 관객이 2배 이상 급증한 공연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클럽공연의 성황과 더불어 '지산' '펜타포트' 많은 기획 페스티벌도 열려 보다 많은 팬들과의 소통의 장이 확장된 한 해였다.
대표적인 가을 음악 페스티벌인 '그랜드민트'에는 김윤아, 이승환, 클래지콰이, 이승열 등과 그간 페스티벌 무대에는 서지 않았던 이소라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10cm, 페퍼톤스, 3호선 버터플라이, 에피톤 프로젝트, 킹스턴 루디스카 등 한국 홍대신을 대표하는 밴드들이 대거 출연해 다양한 음악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 '글로벌개더링'도 올해 마니아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누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프로디지의 내한으로 화제를 모았던 글로벌개더링은 올해 팻보이슬림과 아민 반 뷰렌의 공연으로 2만여 명의 한국의 댄스음악 마니아들을 만족시켰다는 평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팻보이슬림과 월드 DJ 랭킹 1위에 빚나는 아민 반 뷰렌의 공연은 쌀쌀한 새벽공기가 가득한 난지지구를 뜨거운 클럽으로 변모시켰고, 일렉트로닉 문화의 발전 가능성을 보게 했다.
무엇보다 10년이 채 안되는 국내 록페스티벌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많은 음악팬들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페스티벌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모이고 있다. 각자 대형 깃발과 플래카드를 만들거나 바디페인팅, 수건, 개성있는 복장으로 멋을 부리기도 하고, 각자의 응원방식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
◆ 인디음악, 세계로..韓日中 교류 공연 추진중
올해 인디음악은 더 넓은 세상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한데 뭉쳐 홍대 음악의 활성화를 외치고 나선 것. '인디음악의 메카' 홍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40여개 음악레이블의 모임 '서교음악자치회'가 바로 그 중심에 섰다.
인디음악 제작자 친목모임으로 출발한 이 단체는 지난 9월 홍대 인디음악 전체를 '서교'란 이름으로 브랜딩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세계 진출을 선언했다. 록 힙합 스카 등 다양한 장르 안에서 두각을 드러낸 밴드들은 '서교'란 브랜드 아래 뭉쳤고, 해외교류는 물론 홍보의 독자 채널을 마련하는 등 방법을 모색해 왔다.
인디음악 채널 '서교'를 론칭해 서교음악에 소속된 뮤지션들의 공연 동영상, 음악파일, 인터뷰 등을 서비스하고, 홍대 뮤지션들의 음악을 통해 새로운 한류를 개척하고 나섰다. 이는 대중음악에 눌려 제대로 된 홍보 채널 조차 확보하지 못했던 만큼 인디만의 색깔을 살린 독자 채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지속적이면서 체계적인 해외 교류를 위한 루트를 찾겠다는 계획도 첫 걸음을 내딛었다. 홍대 인디음악 전체를 아우르는 '서교'란 브랜드를 하나의 레이블로 두고 세계와 소통하겠다는 것.
현재 '서교 음악'에 소속된 장기하, 노브레인, 보드카레인 등 국내 뮤지션들과 일본 측과의 합동 교차공연 방식으로 파트너쉽을 이루는 것이다. '서울도쿄 사운드 브릿지'는 서교음악자치회가 추진하는 해외 프로젝트의 첫 일환으로 한국 크라앙넛과 보드카레인, 피아노잭과 오또가 최근 도쿄 시부야 라이브클럽과 서울 홍대 라이브클럽 2회 공연을 교차로 진행했다.
한국 무대에 일본 밴드가 게스트로 출연하고, 일본 공연장에 한국 밴드가 나란히 서는 식이다. 또 중국 측과도 긍정적인 의견이 오가고 있다. 최근 록 음악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대변하듯 중국문화예술유한공사는 한·중·일 록페스티벌의 한국 파트너로 '서교음악'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외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싸구려 커피'와 '별일 없이 산다'를 타이틀곡으로 한 일본 데뷔 음반을 발표, 공연을 열었다. 특히 기존 가수들의 해외 활동이 현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장기하는 철저히 한국식의 음악과 특유의 퍼포먼스로 현지 팬들을 사로잡았다.
인디음악의 낯설음은 신선하게 대중 속으로 침투했고, 독특한 노랫말과 소리들은 대중 음악의 한 영역을 구축하며, 가요계에 신선함을 안겨줬다. 인디신의 특별함, 내년 가요계가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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