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자 생명운동에 헌신한 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별세했다. 향년 81세.
8일 뉴스1에 따르면 토지문화재단은 김지하 시인이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알렸다. 김지하 시인은 최근 1년 간 암 투병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필명인 '지하'는 고인이 서울대학교 미학과 재학 시절인 1963년 22세에 시화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접 지었다. 고 김지하 시인은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에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6·3사태를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게 관여했고 이를 저항시로 표현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고인은 1969년 11월 시인지에 '황톳길'을 통해 공식 등단했으며 1970년 5월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필화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떠올랐다.
풍자시 '오적'은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고인이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당시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기 위해 사상계의 시판을 중단했으나 이 시는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6월호에 다시 실렸다.
고인은 1971년 가수 김민기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고 19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 김원보, 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는 1973년 12월 우리나라 마당극의 효시라고 불리는 '진오귀굿'을 만들어 연출하기도 했다. 마당극 '진오귀굿'은 죽은 이의 한을 씻기고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망자의 가족이 무당을 불러 벌이는 전통굿을 차용해 농촌계몽운동의 하나로 공연한 작품이다.
한편 고인은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목포산정초등학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수학했으며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가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고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 됐다.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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